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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흘려 만든 정책, 정치논리에 물거품…성취감 없어 공직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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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우리가 ‘BH(청와대)의 연필’이라고 자조한 적도 있어요. 청와대에서 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 이유를 갖다붙이기 위해 사무관과 서기관을 연필처럼 이용한다는 의미죠.”

사무관으로 4년간 일하다가 지난해 공직을 떠난 A씨(31) 얘기다. 공무원들이 입안한 정책이 정치논리에 따라 그만큼 쉽게 엎어지고 바뀐다는 것이다. 어느 정부에서든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와 여당의 입김이 센 이번 정부에서 이런 경향이 특히 심해졌다. 정부 주도로 추진하던 정책이 뒤로 밀리거나 홍보를 위해 없는 성과를 포장해야 할 때마다 A씨는 회의를 느꼈다. 그는 결국 지난해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1년차 퇴직자 가장 많아

주니어 공무원들의 ‘탈(脫)공직’ 흐름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5급으로 임용해 지난해 퇴직한 10년차 이하 공무원은 총 15명이다. 퇴직자 수는 2016년 3명→2017년 4명→2019년 9명→2020년 15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지금도 나가겠다는 사무관과 서기관들을 붙잡느라 곤욕을 치르는 부처가 있다”며 “언젠가 둑 터지듯 터지지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퇴직한 총 40명 중에는 외교부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았다. 기획재정부가 6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명으로 뒤를 이었다. 재직 기간을 살펴보면 입직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퇴직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2013~2020년 퇴직자의 4분의 1 이상(12명)이 이 시기 공직을 떠났다. 4년을 채우지 못하고 관둔 이가 25명으로, 전체의 62.5%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취업준비생들의 공직 선호도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4년간 행정고시와 외교관 선발시험 경쟁률은 35~40 대 1을 오갔다. 아직은 10년 평균인 37 대 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고시에 합격하고도 입직 후 실망감에 공직을 떠난다는 얘기다.
퇴색하는 직업 매력도
젊은 공무원들의 퇴직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 만족도가 너무 떨어져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 중앙부처 사무관은 “반영되지 않을 정책을 왜 밤새워 준비하나 싶을 때가 많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은 젊은 세대가 업무적인 성취감, 만족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정책을 제대로 펼쳐보고자 아예 입법부로 자리를 옮기는 일도 있다. 지난해 김가람 기재부 사무관(37)이 사표를 내고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게 그런 사례로 통한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갈수록 국회의 영향력이 커지는 세태를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경제 부처 공무원 중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좌절하는 이도 많다. 이는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처럼 민간기업의 임직원, 연구개발자들과 접촉이 잦은 부처에서 특히 심하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선배들이 누리던 혜택을 더 이상 못 받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세종시 이전기관 공무원에게 돌아가던 주택 특별공급은 2019년으로 끝났다. 공무원연금이 거듭 개편되며 신임 사무관이 받을 퇴직연금은 과장급의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후배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 선배들이 아무리 사명감을 강조해도 신임 사무관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퇴직 겁내지 않는 MZ세대
퇴직과 이직을 겁내지 않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성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이들의 이탈이 국가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고시 출신이 입직 후 3~5년 지나 일 좀 하겠다 싶을 때 떠나는 건 국가적으로도 낭비”라며 “이들이 제대로 소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예린/정의진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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