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저임금이 사상 최대폭인 28엔(약 291원) 오른다. 일본 전역의 평균 최저임금이 930엔(약 9678원)으로 올라 내년도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결정한 우리나라와 차이가 다시 벌어지게 됐다.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 소위원회는 지난 14일 최저임금 인상목표액을 28엔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으로 공표한 2002년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 인상폭을 적용한 일본 전역의 평균 최저임금은 902엔에서 930엔으로 3.1% 오른다.
일본은 47개 도도부현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인상목표액을 결정하면 각 지방 심의회가 지역물가 등을 참고해 지역별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현재는 도쿄가 1013엔으로 가장 높고 오키나와 고치 등 7개 현이 792엔으로 가장 낮다. 최저임금이 800엔 미만인 지역이 16개현이다. 인상액(28엔)을 적용하면 일본 전 지역의 최저임금이 800엔을 넘을 전망이다.
도쿄의 최저임금은 1041엔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측 위원은 "최저임금이 700엔대인 지역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일보전진했다"고 평가했다.
새 최저임금은 오는 10월부터 적용된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5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인 2016년부터 최저임금을 연 3% 인상해 전국 평균을 1000엔 이상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에 따라 2019년까지는 매년 3% 안팎 최저임금을 올렸다.
하지만 작년엔 코로나19 충격으로 전년 대비 1엔(0.1%) 인상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가 2018~2019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리면서 원화 기준으로 양국 최저임금 격차가 500원 미만으로 줄었다.
올해 심의회에서 노조측은 지난해 최저임금이 사실상 동결됐다는 이유로 40엔 인상을, 사용자(기업)측은 코로나19 장기화를 이유로 동결을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 합의가 어려워지자 심의회는 표결로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최저임금을 합의가 아닌 표결로 결정한 것은 1979년 이후 42년 만이다. 심의회 참석자 11명 중 사용자 대표 2명을 제외한 9명이 28엔 인상안에 찬성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데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것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내각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호네후토 방침)에 "코로나19 감염증 확대 전의 실적을 이어나가 전국 평균 1000엔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했다. 매년 6~7월 정해지는 호네후토 방침은 일본 정부의 이듬해 경제정책과 예산편성의 기본 방향이 된다.
코로나19 이전 일본의 최저임금은 4년 연속 3%대의 인상률을 나타냈다.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에 "감염증 확대 전의 실적을 이어나간다"고 못박음으로써 사실상 일본 정부가 심의회에 인상률을 3%(25엔) 이상으로 정해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최저임금이 경쟁국에 비해 여전히 낮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은 지난해에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최저임금을 1~2%씩 인상했다는 것이다. 올해 독일의 최저임금은 9.5유로(엔화 환산시 약 1260엔),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10.25유로(약 1360엔)와 8.91파운드(약 1380엔)다.
기업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용자측은 "실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지고 나서는 대책을 마련해도 늦는다는 걸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일본상공회의소와 전국상공회연합회, 전국중소기업단체중앙회 등 중소기업 3단체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심의회의 결정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업이 급격한 임금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면 결과적으로 근로자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가와구치 다이지 도쿄대 교수는 "정부 방침에 따라 무작정 올리기만 계속하면 일정 국면 이후부터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이 발생할 것"이라며 "내년 심의회부터는 인상 효과와 이로 인한 영향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