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이끄는 선봉장이자 위기 때면 소방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해결사로 손꼽힌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이런 금융지주사들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핵심 계열사인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집행한 신규대출과 만기연장 규모는 256조원에 달했다. 이는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고 주요 금융지주사 실적도 일제히 개선됐다. 금융지주사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에 맞서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고 올해 이슈로 급부상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경쟁력 강화하는 금융지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BNK DGB JB 한국투자 메리츠금융 등 10개 금융지주 산하 계열사는 지난해 말 기준 총 264개로 1년 전(243개)보다 8.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임직원수도 15만여 명에서 17만여 명으로 늘었다. 연결 총자산은 2946조원으로 전년 말(2628조원) 대비 318조원(12.1%)가량 불어났다.이들 금융지주사는 지난해 정부와의 협업을 통한 발빠른 대처로 코로나19 위기를 무사히 넘긴 뒤 올 들어 디지털 혁신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금융업 진출에 나선 빅테크 기업의 위협에 맞서 저마다 이종 기업 및 스타트업과의 동시다발적인 제휴를 통해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의 ‘맏형’ 격인 국민은행은 이르면 오는 10월 새 모바일뱅킹 앱인 ‘뉴 스타뱅킹’을 출시한다. 현재 개별 앱으로 쪼개져 있는 ‘KB스타알림(알림앱)’과 ‘KB스마트대출서비스지원(비대면 대출 지원)’, ‘리브똑똑(대화형 뱅킹)’, ‘KB마이머니(자산관리)’ 등을 모두 뉴 스타뱅킹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KB금융은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사업조직(Biz)과 기술조직(Tech)이 함께 일하는 25개의 ‘플랫폼 조직’도 신설했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흔히 ‘애자일’이라고 부르는 조직이다. 기획과 개발, 마케팅, 디자인이 한 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창의적이면서도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한금융그룹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총 네 가지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2019년 9월 금융권 최초로 설립한 AI 전문자회사인 ‘신한AI’는 지난해 9월 개발 완료한 ‘마켓워닝시스템’을 주요 자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AI가 매일 600여 가지의 지표를 입수·분석해 금융시장 이상 감지 시 최대 한 달 전 리스크관리 담당자에게 알려준다. 3분기 중에는 새 AI 투자자문 플랫폼인 ‘네오(NEO) 2.0’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는 계열사별로 더욱 다양한 혁신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게 신한금융의 각오다.
하나금융그룹은 대표 앱인 ‘하나원큐’를 소비자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소비자가 조회·이체 등 단순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하나원큐에 드나들면서 발자취를 오랫동안 남기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10여 개 외부 제휴사와 손잡고 하나원큐에서 쇼핑, 부동산, 헬스케어, 모빌리티, 골프, 여행 등 다양한 생활금융 콘텐츠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하나의 앱으로 중고차 직거래부터 세금 계산, 부동산 시세 조회, 호텔 예약, 실손보험 청구까지 다양한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금융그룹의 ‘간판’인 우리은행도 모바일 뱅킹 앱인 ‘우리WON뱅킹’의 생활편의 서비스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를 출시해 실손보험 가입자가 진단서 등 종이서류 없이도 우리WON뱅킹 앱에서 간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2월 선보인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 서비스’에서는 모든 종류의 제로페이 모바일 상품권을 우리WON뱅킹에서 최대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금융권 최초의 ‘우리 아이 계좌조회 서비스’는 만 14세 미만 미성년 자녀 명의 계좌를 보유 중인 고객이 해당 계좌의 이용내역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 우리카드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우리페이’를 앱에 탑재하고 택배 예약 및 조회 서비스와 제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미래 먹거리’ ESG 경영에도 박차
농협금융그룹은 최근 ESG 경영체제로의 완전한 전환을 뜻하는 ‘ESG 트랜스포메이션 2025’ 비전을 선포했다. 기후 변화 리스크에 대응하고,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과 그린뉴딜 정책에 발맞춰 친환경 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및 채권 투자를 제한하고 친환경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내용의 ‘탈석탄 금융’도 선언했다. 농협금융의 ESG 투자는 농협의 특성을 반영한 투트랙 전략으로 요약된다.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그린 임팩트 금융’과 친환경 농업·농식품 기업을 지원하는 ‘농업 임팩트 금융’에 주력할 계획이다.BNK금융그룹은 지역금융그룹으로서 경기침체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취약계층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포용 금융’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부산은행은 기초생활수급자,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각종 수수료를 면제하고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등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고금리 대환 대출’, ‘재기지원’ 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BNK금융은 2019년 9월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중소기업과 혁신성장기업 등을 대상으로 대출, 자본투자, 디지털, 일자리혁신의 4가지 분야에서 3년 동안 약 21조원을 지원하는 ‘BNK 부·울·경 혁신금융’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