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외곽지역 재건축 단지에서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조건부 통과'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철회에 이어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가 나오면서 일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재건축 규제를 서서히 푸는 것 아니냐하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재건축 기대감이 부푸면서도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 절차가 남아 완전히 통과를 낙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여의도 등 서울 주요지역의 재건축 빗장은 여전히 막혀있는데다가 정부가 여러차례 규제 강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럭키’ 아파트는 최근 재건축을 위한 정밀안전진단(1차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조건부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진단은 A~E등급으로 구분된다. 정밀안전진단 결과 A~C등급을 받으면 재건축이 불가능하다. E등급은 재건축 확정이다. D등급은 추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거쳐 재건축 여부가 결정된다.
남서울럭키는 1982년 준공해 올해로 40년차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9개 동 986가구 규모로, 용적률이 123%밖에 되지 않아 사업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이 단지 전용면적 49㎡가 6억35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주택형은 6억50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남서울럭키 재건축 추진위원회(가칭) 관계자는 “금천구는 오랜기간 개발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어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크다”며 “1억5000여만원가량의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20여일 만에 모금했을 정도로 주민들의 호응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비강남권을 중심으로 도시정비사업이 물꼬를 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재건축 안전진단과 관련한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진 상황이다. 강동구에선 명일동 ‘신동아’와 ‘우성’이 각각 5월과 6월 안전진단에서 D등급(조건부 재건축)을 받았다. 노원구에선 작년 말 공릉동 태릉 우성 아파트가, 최근엔 ‘상계주공’ 6단지도 D등급을 받아 안전진단을 조건부 통과했다.
그동안 정비사업을 지나치게 막는다는 지적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비교적 시장의 관심이 덜하고 집값 상승속도 면에서도 부담이 덜한 몇몇 지역에서 사업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제도 면에서도 사실상 재건축을 금지하던 정부와 여당의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전날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나중에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도록 한 정부 규제가 1년 1개월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이번 정부가 주택시장 수요를 억누르는 주요 규제책을 전면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선정 주체를 변경하는 내용도 삭제했다. 당초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에 있던 재건축 안전진단 선정 주체를 광역자치단체로 변경하는 방안을 정부여당이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당초 재건축에 적극적이던 야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을 의식해 추진하고자 한 조치다.
하지만 규제 완화를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안전진단 통과 단지들이 대부분 '조건부 재건축'인 상황이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이 담당하는 적정성 검토가 넘기 힘든 관문이다. 최근에는 강동구 명일동 ‘고덕주공 9단지’(1320가구)가 적정성 검토에서 C등급을 받아 최종 탈락했다. 안전진단을 강화한 지난해 ‘6·17 대책’ 이후 적정성 검토를 통과한 서울 아파트는 도봉구 ‘삼환도봉’(660가구) 한 곳 뿐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외곽지역 단지들 몇 곳의 안전진단 통과만 놓고 정부의 규제 방향을 가늠하긴 어렵다”며 “강남·여의도 등 시장의 관심도가 높고 정비사업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지들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앞서 정부는 재건축 사업과 관련 규제완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야당 등이 강력하게 요구한 재건축 안전진단 등 정비사업 규제 풀기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노 장관은 “민간이든 공공이든 개발이익을 특정인 등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며 “시장이 안정된 뒤 규제 완화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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