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부러워하는 의과대학에 합격했지만 당시 거의 모든 의사가 꺼리는 재활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동료 의사들은 대학병원에 남거나 자기 병원을 차렸지만 그는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에서 일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리고 33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12일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미경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전문의(63·사진) 얘기다. 성천상은 국내 최초로 수액제를 개발한 고(故) 성천 이기석 JW중외제약그룹 창업주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인류 복지 증진에 공헌한 참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2012년 만든 상이다.
이씨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기로 한 것은 가톨릭의대를 다니던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당시 비인기 전공이던 ‘재활의학’을 택한 데 이어 1988년 국내 1호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문을 연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 터를 잡은 것. “어려운 환경 때문에 의사를 만나기 힘든 곳에서 인술을 펼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장애인에게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정서도 함께 돌보는 ‘전인(全人)적 재활치료’를 하는 의사는 이씨가 유일했다. 지금도 복지관에 상근하는 의사는 이씨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씨는 장애인 재활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여럿 냈다. 의사와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장애인 재활을 돕는 ‘다영역 진단 시스템’을 정립한 게 바로 그다. 발달장애 아동을 지켜보는 대신 곧바로 조기 치료하는 ‘영유아 조기 개입’ 모델을 국내 최초로 보급하기도 했다. 이씨는 1998년 자폐아동의 감각장애 개선을 위한 ‘감각통합치료’를 처음 들여왔고, 2005년에는 뇌성마비 조기 치료에 중요한 진단 척도인 ‘보이타 조기진단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중외학술복지재단 관계자는 “이씨는 장애재활 관련 도서 《스노젤렌, 우리 아이 왜 이럴까?》도 냈고 국내 최초로 ‘장애 예방 비디오’를 제작해 1만1500개를 의료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며 “국내 장애인 재활의학 분야에서 그가 이룬 성과는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2018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촉탁 의사’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복지관의 요청과 본인의 소명이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평생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은 이번 수상 소감에 그대로 묻어 있다.
“이런 귀한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게 없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 상을 받기에 합당한 다른 의료인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명목상 수상자지만 실제로는 장애인 재활을 위해 몸바쳐 일하고 있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모든 직원에게 주신 상이라고 알겠습니다. 하나 더. 장애라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모든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격려와 지지를 담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상식은 다음달 19일 서울 서초동 JW중외제약 본사에서 열린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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