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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의 통찰과 전망]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팩시밀리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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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자연과학상과 평화상을 시상해온 노벨상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69년에 추가된 사회과학 분야의 경제학상도 마찬가지다. 수상자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주장하는 이론에 무게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이들도 현실과 동떨어진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폴 크루그먼(1953~ )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1997년 일어난 아시아 외환위기를 사전에 경고해 주목받았다. 이듬해인 1998년 한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시행되는 위기의 와중에도 두루넷이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됐다. 크루그먼은 그해 6월 미국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고문에서 당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던 인터넷 산업의 전망에 대해 언급했다. “2005년께면 인터넷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팩시밀리가 경제에 끼친 영향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참 빗나간 예측이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 분야를 넘어 일상생활에서 사회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반면, 팩시밀리는 전화선을 통해 이미지를 전송하는 새로운 디바이스에 불과했다. 현재 그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사악한 다단계 사기로 치부하고 있다. 팩시밀리와 인터넷의 영향을 동급으로 봤던 관점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폴 새뮤얼슨(1915~2009)은 197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학문적 성취와 아울러 경제학 원론 교과서로 명성을 얻었다. 1948년 발간되기 시작한 《경제학(Economics)》은 19판까지 인쇄되며 전 세계 27개 언어로 번역됐고, 미국에서만 4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새뮤얼슨은 소련의 공산주의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오판했다.

1961년판 경제학 교과서 서문에 ‘소련 경제는 미국 경제를 이르면 1984년, 늦어도 1997년에는 추월하고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썼다. 1961년 당시 소련 경제는 미국의 50% 규모에 불과했다. 20년이 지난 1980년판에는 소련 경제가 2002년에서 2012년 사이에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이라고 수정했다. 다시 10년이 지난 1989년판에서는 ‘많은 회의론자가 예전에 믿었던 것과는 달리 소련 경제는 사회주의 통제경제가 작동하고 번성할 수 있다는 증거’라며 소련 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991년 소련은 붕괴됐다.

세계적 명성의 경제학자를 이런 일화로 단순화해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높은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판단 착오를 범하는 이유는 반추할 필요가 있다. 먼저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학자들도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각자의 휴리스틱(heuristic) 오류인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기존 질서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전망했다는 한계가 있다. 정교한 방법론으로 정제된 데이터를 분석해도 기존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변곡점,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시기다. 기업 환경은 아날로그 시대의 고체적 안정성에서 디지털 기술을 매개체로 액체적 유동성으로 변화하고 인공지능(AI)까지 접목되면서 기체적 역동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마치 물이 섭씨 0도 이하에서 얼음이라는 고체로 존재하다가 온도가 올라가면 액체가 되고 100도가 넘어가면 기체로 질적 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얼음이라는 고체의 연장선에서는 물이라는 액체, 수증기라는 기체의 존재 방식이 연결되지 않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날로그 질서의 연장선에서 디지털 전환의 변곡점과 불연속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관점 전환 없이는 이해조차 어렵고 거부감이나 불안만 증폭되기 마련이다. 이는 비단 경제·산업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공통적 사항이다.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역동적 미래를 만들기 위한 성찰과 빅싱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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