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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함정…'중간의 선호'에 의해 사회적 의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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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라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사회 구성원의 의사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이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가져야 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대안은 완전히 비교할 수 있어야 하며(완비성), 특정 개인의 선택이 다른 사회 구성원의 선택을 무시하고 결과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비독재성) 등 하나하나 살펴보면 당연해보이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다섯 가지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의사결정 방법은 없다는 것이 애로의 주장입니다.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이 중상모략이 나타나기도 하는 현실정치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애로의 정리는 민주주의가 결함이 많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는 합니다.
다수결의 함정들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만장일치제를 보면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을 이끌어낼 수 있고(파레토 원칙), 결정 이후에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장일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만장일치를 노리다가는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다수결 원리는 어떨까요? 모두가 합의하지 않아도 되고 가급적 많은 이의 의견을 비교적 쉽고 간단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절반보다 단 1표라도 더 많은, ‘50%+1표’를 의미하는 과반수는 여러 의사결정 방법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바로 해럴드 호텔링, 앤서니 다운스, 덩컨 블랙 등이 이론화한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라는 것이죠. 중위투표자는 투표할 사람 모두를 일정한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운다고 가정할 때 그 줄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 투표자를 뜻합니다. 다수결 투표에서는 결국 중위투표자가 원하는 대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위투표도 모든 대안을 한 줄로 세울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합니다. 한 줄로 세우기 어려운 여러 이슈가 있을 때에는 중위투표자를 선정하기 어렵죠. 또 모든 유권자가 투표하지 않고 일부만 투표한다면, 전체 유권자의 한가운데에 선 사람과 중위투표자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당들이 표를 얻기 위해 중위적 정책을 선호하다 보면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인 니콜라 드 콩도르세가 얘기한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콩도르세의 역설)’은 다수결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A, B, C 세 정책 가운데 유권자의 3분의 1은 A>B>C 순으로, 다른 3분의 1은 B>C>A 순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C>A>B 순으로 선호한다고 칩시다. 먼저 A와 B를 비교하면 A가 B보다 선호도가 높아 과반수를 획득합니다. 이어 A와 남은 C를 비교하면 C가 더 선호돼 C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B와 C를 먼저 비교하면 B가 과반수가 되고 이어 남은 A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A가 최종 결정됩니다. 이처럼 3개 이상의 대안을 다수결로 선택할 때는 묻는 순서나 투표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수결은 또 ‘투표의 거래’ 또는 ‘투표의 담합’이라 불리는 로그롤링(log-rolling)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컨대 A안과 B안은 각각 2명의 찬성자와 3명의 반대자가 있어 통과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때 A 지지자 2명과 B 지지자 2명이 서로 밀어주기로 담합하면 두 안이 모두 다수결로 통과됩니다. 두 사람이 협력해 물 위에 뜬 통나무(log)를 굴리는(rolling) 것처럼 말이죠.

로그롤링과 대비되는 용어로 포크배럴(pork barrel)이 있습니다. 정부 예산이 특정 집단 또는 특정 지역만을 위해 배정되도록 하는 현상인데, 이권을 얻으려 모여드는 국회의원들이 마치 농장주가 돼지고기(pork)를 담은 통(barrel)에서 한 조각의 고기를 던져주면 모여드는 노예와 같다고 비유해서 쓴 말입니다. 로그롤링과 함께 민의를 왜곡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다수의 독재 논란도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를 우려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18~19세기 정치사상가인 존 애덤스, 알렉시 드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설파한 것으로 특정 집단이 대다수의 지지를 얻는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절대적인 정의라고 착각하고 다른 소수파를 억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토크빌은 이성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 카리스마 있고 선동을 잘하는 사람이 국민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공약을 내세워 포퓰리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밀도 민주주의가 사악하고 무능한 다수 독재로 타락할 수 있다고 걱정했죠.

토크빌은 ‘참여’ 즉 깨어 있는 시민, 밀은 ‘숙의’ 즉 치열한 토론으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완벽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겠죠.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
① 만장일치, 가중 다수결(3분의 2 이상 찬성), 과반수(50%+1표), 다수결(최다 득표) 등 다양한 의사결정 방법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② 과반수 또는 다수결로 결정한 사안이 민주적 방법인지 혹은 ‘다수의 독재’인지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③ 민주주의 혹은 다수결 원리보다 더 합리적이며 모든 구성원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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