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의 한국을 보니 70년 전 우리의 희생에 보람을 느낍니다. 6·25전쟁에서 저와 함께 싸웠던 동료 몇 명을 소개합니다.”
23일 경기 용인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 가로 18m, 세로 4m의 대화면에 상영된 영상을 통해 앳된 청년 시절의 모습을 한 폴 커닝햄 하사(91)가 생존 전우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을 피신시키다 포격에 다리와 눈을 잃은 마빈 던 상병, 비행기 조종사를 구조하려고 언 바다로 뛰어들었던 류 브래들리 하사, 철원 고지전에서 활약한 시어도어 말콤 일병…. 화면 속에서 10명의 참전용사는 각각 참전 당시의 젊은 모습으로 등장해 감사 메달을 받아 목에 걸었다. 이를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노병(老兵)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날 새에덴교회는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아 미국, 캐나다, 필리핀, 태국 등 4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전사자 및 실종자의 유가족 등이 온라인으로 만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온라인 보은행사’를 열었다. 행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비대면 온라인 위주로 진행됐다. 세계 각지의 참전용사 150여 명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참여했고, 현장 행사에는 국군 참전용사 50여 명과 교회 관계자만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를 생중계한 유튜브 채널은 동시 접속자 수가 3000명을 넘어서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영상 합성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감사 메달 수여식’. 참전용사 10명은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한 영상에 젊은 시절 얼굴로 등장해 소강석 목사가 걸어주는 감사 메달을 받았다. 이들의 옛날 사진을 기반으로 정보기술(IT)기업 클레온이 합성한 영상이다. 소 목사는 “참전용사들께서 꽃다운 청춘을 바쳐 흘리신 뜨거운 눈물과 붉은 피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여러분의 수고와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행사에 축사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장인 김진표 의원이 대독한 축사에서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며 “이제 용사들이 남겨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대한민국이 앞장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아 한국전 참전용사 보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분께 따뜻한 인사와 축하를 드린다”며 “프로그램을 매년 주최해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께 미국 국민을 대신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올해로 15회째다. 2007년 마틴 루서 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한 소 목사가 ‘마틴 루서 킹 퍼레이드’ 전야제에서 흑인 참전용사 레리 레딕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레딕은 당시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며 “전쟁 후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형편이 어려워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해 6월 레딕 등 50여 명의 유엔군 참전용사가 교회 초청으로 처음 방한했다. 항공료,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은 교회가 부담했다.
이후 매년 각국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한국을 찾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워싱턴DC·시카고에서 현지 초청행사를 열기도 했다. 지난 14년 동안 이렇게 방한하거나 미국 현지 초청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와 가족, 유가족은 모두 8개국 4000여 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와 올해 행사는 온라인 중심으로 열렸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