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 함께 맞서는 ‘AI 전우’는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군도 AI 전력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이달 ‘국방 인공지능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각 군이 분산 추진하던 AI 전력화 사업을 통합 추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일반 전초(GOP)를 정찰하는 AI 수색 차량부터 바다를 지키는 군집형 무인수상정까지 AI 기술이 미래전(戰) 대비의 첨병으로 무게중심을 더해가고 있다.
TF로 힘 받는 육·해·공 ‘AI 청사진’
군은 지금까지 AI 기술 도입을 산발적으로 추진했다. 최근 육군이 주력하던 과제는 AI를 기반으로 한 과학화 경계시스템 개편이다. 지난해 11월 이른바 ‘월책 귀순’과 지난 2월 ‘헤엄 귀순’ 사태가 기폭제였다. AI는 해안의 사각지대나 미확인 지뢰지대 경계도 24시간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국방부는 올해 22사단에 시범적으로 도입된 AI 감시 장비를 전군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TF를 통해 이런 계획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AI 기반 자율수색차량도 실전 배치에 탄력을 받게 됐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4월 원격조종 및 자율주행이 가능한 무인수색차량 개발을 마쳤다. 향후 기갑 수색부대에 배치해 작전 지역 최전방에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해군은 AI로 해상 작전의 기본 개념을 바꿔나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시스템 등이 함께 ‘군집 무인수상정’ 기술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AI 강화 학습을 기반으로 실시간 상황 인지와 고도의 교전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해군은 바닷속 지뢰인 ‘기뢰’를 제거하는 용도로도 AI를 활용할 계획이다. 주요 항구의 안전항로 확보, 북한 공기부양상륙정 등 적군 수상 침투의 추적도 가능해진다.
공군은 ‘지능형 스마트비행단’이라는 이름으로 AI 기술 활용에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무인화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관제대대를 구축, 증강현실(AR)과 AI 기술 등을 활용해 활주로를 관리할 계획이다. 민간을 통한 무인전투비행체 개발도 추진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최근 이스라엘 국영 방산업체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무인기의 전투 효과를 극대화하는 유무인 복합운영체계(MUM-T)를 개발하고 있다. ADD 역시 무인기 자율화를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이다.
AI 무기, ‘선택과 집중’ 필요
전문가들은 다만 이번에 신설된 컨트롤타워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지속적이고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각 군이 진행하던 프로젝트 대다수가 ‘선언적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드론 전력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초 AI 기반 핵심 전력 사업 중 가장 속도가 높다고 평가받은 게 드론이었다. 육군은 2018년 드론봇 전투단을 창설하고 ‘AI 드론봇’ 도입 계획을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전 부대 전략화를 완성한다는 게 목표였지만, 아직 기술 표준도 구축하지 못했다.AI 윤리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보수적 접근도 돌파해야 할 숙제로 지목된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2018년 KAIST와 한화시스템이 연 ‘국방 AI융합연구센터’를 둘러싼 국제 학계 갈등이다. 당시 세계적인 컴퓨터 과학자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세계 29개국 전문가들과 함께 KAIST와의 연구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연구센터를 두고 “KAIST가 테러 무기를 만든다”고 비판한 것이다. 학계와 방산업계, 정부는 이후로도 국방 AI 기술 도입에 긴장감을 지녀왔다.
군이 최근까지 ‘AI 무기화’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해온 것도 이런 기류와 연결돼 있다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달 조직된 TF도 대외적으로는 각 군의 AI 전략 자산 개발보다 ‘지능형 데이터 관리’ ‘스마트 전산 운영 체계’ 등 비전투 분야 과제를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윤리적인 문제가 얽혀 있지만, 미국 등 동맹국이 연합 작전을 가정할 때 항공우주 전력 등 외면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며 “작전 운용 측면에서 쓸 수 있고 써야 하는 기술을 세심히 선별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송영찬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