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없다!” 지난해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남성 경찰관에 의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사회 전역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확산됐지만,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상황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인종 차별 사건이 이어지고 있고, 흑인에서 동양인으로 그 대상이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항하듯 출판시장에서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책이 지속적으로 출간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며 1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이자벨 윌커슨의 《카스트(Caste)》를 비롯해 흑인의 삶과 인권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지난 6월 1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지나쳐버린 말(How the Word Is Passed)》은 노예제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기념물과 상징물을 통해 여전히 미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의 역사를 들춰낸다.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기자이면서 시인인 클린트 스미스는 자신의 고향인 뉴올리언스를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노예제도가 미국의 역사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준다. 수세기에 걸친 미국 역사에서 노예제도가 남긴 유산과 흔적을 찾아내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소개한다.
흑인 노예의 영혼이 서려 있는 장소 뉴올리언스, 토머스 제퍼슨의 몬티첼로 사저,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휘트니 플랜테이션 역사지구, 악명 높았던 앙골라 플랜테이션 감옥, 수만 명의 남부연합군 병사들의 마지막 안식처 블랜드포드 공동묘지, 노예해방기념일에 축제를 여는 갤버스턴섬, 노예 기반 산업으로 만들어진 도시 뉴욕,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문이 있었던 세네갈의 고레 섬에 이르기까지, 책은 ‘노예제도의 진실을 품고 있는 유적지’로 독자들을 초대하며, 그것들이 감추고 있거나 혹은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예제도를 부정하는 미국의 역사는 절반만 진실이거나, 착각으로 이뤄져 있거나, 또는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일갈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으로 추앙받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사저 몬티첼로는 버지니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한 관광명소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로 시작하는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그곳이 사실은 수백 명의 흑인 노예가 비참하게 억압당했던 장소였다. 제퍼슨은 몬티첼로 저택에서 흑인 노예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하거나 각종 허드렛일을 시키는 등 제대로 사람 대접조차 하지 않았다. 제퍼슨이 남긴 수많은 편지와 글에는 그가 얼마나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는지 잘 드러나 있다.
“뉴올리언스에 세워져 있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이 철거됐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의 수백 개 거리, 공공장소, 공원, 학교에 여전히 노예 소유자들, 그리고 노예제도를 옹호한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도 가슴 아픈 노예제도가 대물림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6월 19일은 미국의 노예해방기념일 ‘준틴스(Juneteenth)’이다. ‘June 19th’의 줄임말이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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