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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공동체 속의 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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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내려가는 길의 풍경은 언제봐도 정겹다. 주변은 녹음이 짙어졌고 모내기를 마친 들판에는 농부의 손길이 느껴진다. 고향에 가까워져서일까, 때마침 라디오에서 ‘진주 난봉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반갑고 여러 추억이 떠오른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애달픈 가락이 그 시절 청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줬던 것 같다. 그때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상념에 젖다 보니 선후배와 함께한 농활의 기억이 눈앞에 어린다.

농심을 가득 품고 나선 농활에서 우리는 농부가 됐고, 때로는 선생님이 됐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열정을 갖고 임했던 밭일에 생각만큼 진전이 없어 힘겨움이 앞섰다. 초보 농부에게 농사일의 어려움은 당연했을 것이다.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참이 늘어날 때쯤 함께 일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부른다. 그 가락은 노동요였고 힘든 농사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분들의 노래가 끝나자 우리는 또 다른 노동요를 불렀다.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노동요라 하겠으나, 전통 민요로서의 노동요는 대개 선창과 후렴구로 구분된 대화 형식을 차용한다. 선창이 절대적 능력자에 대한 완급 조절의 요구라면, 후렴구는 후선의 구성원을 격려하는 데 충실한 구조다. 힘겨운 일을 하던 농부에게 힘이 됐던 응원가처럼, 노동요는 일이 서툰 구성원에게 핀잔보다 격려로 결속력을 강화할 집단 주문이 됐다.

과거 농경사회는 농사 외에도 고기잡이, 상여 운반, 길쌈 등 마을공동체 안에서 노동을 공유했다. 노동 공유는 공동체 번성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 속에 결속력 약화의 두려움, 즉 공동체 훼손의 한계도 내포했으리라. 한계 극복 차원에서 서로를 추동할 수단으로 노동요만 한 것이 있었을까.

오늘날 공동체는 단순히 마을에 국한돼 노동을 공유하던 농경사회와 확연히 다르다. 도시화 속에 생활영역 확장과 다원적 인간관계 아래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됐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화와 맞물려 자신에게 집중하고 타인과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동체 속에서 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한다. 그래서 우리를 이끌어 줄 노동요와 같은 매개체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올해도 여지없이 계절의 변화와 마주해 있다. 치열한 일상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누적돼 그 변화에 저항할 겨를도 없이 무력화되기도 한다. 이때 고단한 일상을 격려할 새로운 노동요가 필요하다. 트로트거나 팝이거나 장르를 가릴 이유는 없다. 공동체 구성원 간 차이를 고려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면 더 좋다. 그것만으로도 공동체 내 소통과 이해의 수단으로 노동요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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