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기 지속하면 물가 못 잡아”
Fed가 테이퍼링 조기 착수 등 긴축 전환을 준비 중이란 징후는 주요 인사들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테이퍼링 논의 가능성을 시사한 당국자는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연방은행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총재,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 랜들 퀄스 부의장 등 Fed 내에서만 최소 5명에 달한다는 게 CNBC의 보도다. 이 중 퀄스 부의장은 정책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FOMC 위원 중 한 명이다. 메스터 총재는 지난 4일 “자산 매입과 기준금리 등 정책 전반에 대해 재논의할 시점이 다가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CNBC는 오는 15~16일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이 공식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광범위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덕분에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 데다 물가 상승세 역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CNBC는 “Fed가 맞닥뜨릴 최대 위협은 통화 팽창 정책을 너무 오래 끌면서 인플레이션을 영속적인 문제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FOMC 회의부터 긴축 논의에 착수하고 늦어도 초가을엔 테이퍼링 일정을 발표한 다음 연말부터 자산 매입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FOMC에 앞선 10일 공개되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배경 중 하나다. 5월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뛰었을 것이란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전문가 집계치다. 물가 상승은 고용 회복세와 함께 Fed의 조기 긴축을 압박하는 핵심 요인이다.
Fed는 작년 6월부터 매달 1200억달러의 미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당국이 테이퍼링에 들어가면 내년 말까지 매달 100억~150억달러씩 채권 매입액을 줄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취약층·신흥국엔 재앙 될 수도
도이체방크는 미 통화당국이 긴축에 나서지 않은 채 물가 상승을 방관한다면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물가는 시한폭탄과 같다고도 했다.이 은행은 7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Fed가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이대로라면 1970년대의 초(超)인플레이션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물가상승률은 1970년대 들어 10년 동안 연평균 약 7%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불황이 닥쳤다.
보고서는 “Fed를 포함한 중앙은행들이 물가 우려를 무시하고 경기 부양에만 집중한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늦어도 2023년 이후엔 실수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Fed가 자체 점도표(기준금리 전망)를 통해 2023년부터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지만 너무 늦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폴커츠-란다우 도이체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긴축 전환이 늦으면 세계적 불황 등 심각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며 “사회 취약계층과 신흥국의 재정적 타격은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WSJ도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 회복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목재 철광석 구리 등 가격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고 옥수수 대두(콩) 밀 등 농산물 가격은 8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다. WSJ는 “Fed가 지금과 같은 고물가 압력을 계속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조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