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가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 사전검토제를 도입하기로 하자 국회의원들이 입법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제처는 법안 사전검토제를 포함한 ‘법제업무 운영규정 개정안’을 지난 2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부처 간 이견 등이 법률안 국회 심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우 정부 신뢰성과 입법 효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법제처 사전검토제를 도입하고, 그 구체적인 사항은 법제처장이 정하도록 위임함’이라고 돼 있다.
법제처가 사전검토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국회의원의 ‘묻지마식 입법 발의’로 인해 현실적·법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법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부처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이른바 ‘청부입법’이 난무하면서 중복 규제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제업무 운영규정 제11조4’에 따르면 지금도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이견이 있을 경우 각 부처 장들이 법제처장에게 사안을 정부입법정책협의회에 상정해 조율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규정이 바뀌면 협의회에 상정할 필요 없이 법제처가 자체적으로 조율해 수정을 추진한다.
입법권이 국회 고유 권한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행정기관인 법제처까지 나설 정도로 함량 미달 법안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지난 1년간 발의된 의원 법안은 1만14건에 달한다. 20대 국회 4년간 의원 발의 건수(2만3047건)의 절반에 육박한다. 의원 발의 법안 건수는 18대 1만2220건, 19대 1만6729건 등 증가세다. 공천심사나 의정활동 평가 때 법안 발의 건수 등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특정 부처가 가져온 법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온라인플랫폼법 개정안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안뿐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한 법안들도 있다.
물론 국회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원회와 법사위를 거치며 법안 심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영국 독일처럼 사전 입법영향평가 등의 절차가 없다. 지금처럼 여당이 압도적 다수일 땐 입법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법제처의 사전검토제 추진을 ‘월권’이라며 발끈할 게 아니라, 국회 스스로 입법권 오·남용을 반성하고 적절한 제동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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