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9000원으로 3.2%인상할 경우 13만4000명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16조9000억원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만원으로 14.7%인상땐 56만3000명의 일자리와 72조3000억원의 GDP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를 초래해 소득 분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사정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오는 7월 중순까지 결정할 전망이다.
"코로나때보다 최저임금 급등시 소득분배 더 악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최저임금의 중소기업 일자리영향 토론회’에서 중소기업 전문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은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의 모형을 적용해 2022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거시경제 시뮬레이션을 연구했다. 김재현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면 GDP의 4%, 9000원으로 인상해도 GDP의 1%가까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하는 등 노동정책 방향을 코로나발(發) 경기침체 회복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2년간 최저 임금을 2017년 대비 29.1% 인상하면서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어 ‘역대급’소득 감소가 나타났다. 저소득층인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은 최저임금 인상 직후인 2018년 1분기부터 4분기까지 전년 대비 -13%에서 -36%의 감소세를 보였다. 그 이전까지 10~20%의 증가세를 보이다 갑자기 꺾인 것이다. 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해 감소세(-3~-17%)보다 컸다. 반면 고소득층인 5분위 가구 근로소득은 2018년 11~14%로 증가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영세 자영업자의 고용이 급감했고, 비정규직 저소득층 근로자 역시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감소했으며 고소득층 정규직 근로자만 임금 인상의 수혜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김재현 실장은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율과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율 모두 ‘역대급’을 기록해 소득분배도 악화됐다”며 “소득 격차는 코로나 사태 때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된 2018년 더 벌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은 세계 경기가 양호했고, 우리나라 경기도 회복기였던 시점이었다”며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친(親) 노동 정책을 강행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9%로 떨어져 미국(3.2%)보다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역효과만 냈다”고 그는 덧붙였다.
美 日 英처럼 최저임금 산업별 지역별 차등 적용을
이날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2017년과 2018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소득에 대한 왜곡 현상도 줬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저임금이 높아지는 만큼 노동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으면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며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산업별 지역별로 차등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홍성길 한국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한 것은 기업 규모별, 산업별로 노동생산성이 다르고 지역별, 연령별로 근로자 생계비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한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차등 적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그리스 등은 지역별·업종별·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영국 칠레 벨기에 아일랜드 뉴질랜드 이스라엘 등은 연령별·숙련도별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도 업종별로 차등 지급한다. 아일랜드의 경우 경제적 곤란으로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울 경우 일정기간(3~12개월) 최저임금보다 늦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주휴수당 감안시 일본보다 높은 韓 최저임금
홍성길 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없애고 부부간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는 편의점이 많아졌다”며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주휴수당 제도로 15시간씩 ‘쪼개기 알바’자리만 생겨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휴수당을 감안한 최저시급은 1만464원으로 일본(9336원)보다 높은 수준이며 미국 연방 최저임금(8174원)보다도 높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몰려있는 경기 반월산업단지내 염색업체 단체인 반월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의 구홍림 이사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9%대로 아시아 국가에선 일본 대만 등 제조업 경쟁 국가의 두 배 수준이며, 금액 측면에서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10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이고 현재 수익을 2~3%내기도 어려운 상태인데 최저임금까지 올라 중소 제조업체들은 벼랑끝에 몰린 상태”라고 했다. 그는 “국내 일자리는 모두 최저임금 이상이고 최저임금이 적용받는 일자리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라며 “이들은 수입을 거의 다 본국으로 송금하기 때문에 내수 경제에 기여도가 낮다”고 말했다.
재활용선별업체인 월드EP무역의 송삼연 부장은 “우리나라 중소제조업 근로자는 대체로 고령층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나뉘는 데, 최저임금을 올리면 임금 부담이 높은 내국인부터 감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 제조업체 취업자들 대부분 생계가 막막한 고령층이 많은 데, 최저임금을 올리면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될까 우려된다”며 “주변에 사업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면 문을 닫겠다’고 토로한다”고 전했다.
김문식 중기중앙회 최저임금 특위 위원장은 “중소기업계 절반이상이 '현재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1년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고 45%가 '최저임금 인상시 고용감축으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했다”며 "경제지표가 코로나 기저효과로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계는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