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한없이 무능하지만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학문, 경제학 말이다. 거대한 영향력만큼 경제학을 둘러싼 모든 것이 논쟁적이다.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는 비판, 위기를 예측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 자부하면서 보편적인 진리를 밝히는 ‘과학’을 표방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그래서 반발과 질시를 자초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은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 비판적 해설서다. 30년에 걸쳐 완성한 평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 3부작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현대 경제학 연구 풍토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점잖은 타이틀을 단 한국어판보다 ‘경제학은 무엇이 잘못됐나(What’s wrong with Economics)’라는 원저 제목이 더 직설적이다.
책은 전편에 걸쳐 주류 경제학이 근거한 전제의 부실함과 연구방법론상 허점, 기존 주요 연구의 한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된 주류 경제학은 너덜너덜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 ‘대안 없는 공세’에 머물지 않는 게 수다한 ‘비주류’ 경제학 서적과의 차이점이다. 저자는 주류 경제학의 성과를 부인하지도, 억지로 ‘왕좌’에서 끌어내리려고도 않는다.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다.
시종일관 현대 경제학의 폐해를 들추기 위한 메스는 쉴 틈 없이 가로(연구방법론상 한계), 세로(역사적 분석)로 교차한다. 수술대에 먼저 오른 환부는 ‘잘못된 가설’과 ‘닫힌 시스템’이다. 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고, 사리사욕이 경제 행동의 동인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특별한 상황, 특별한 시점을 제외하고는 성립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개념에 불과할 뿐이다.
경제 주체의 행동이 단순한 행동 공리나 선형적 수학모델로 축소되는 것도 경제학의 시야를 좁혔다. 각 경제 주체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축구장이 아닌, 체스판 위에서 규칙에 맞춰 움직이는 꼴이 됐다. 경우의 수는 많아봤자 유한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역사와 사회, 제도를 배제한 채 개인의 선택을 ‘돈의 척도’로 분석했지만, 여전히 생활의 많은 부분은 경제적 계산의 영역 밖에 남았다는 것을 놓쳤다. 합리적 선택만을 따진 방정식은 ‘부분으로 전체를 대변하는’ 전형적인 오류에 빠졌다.
경제학이 ‘과학’의 지위를 넘보는 것도 과욕에 불과했다. 경제학이 찾아낸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은 자연과학의 법칙이 통용되는 영역에는 비할 바 없이 협소하다. 소위 ‘보편적 법칙’은 특별한 조건에 종속될 뿐이다. 귀납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부 논리만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지덕지 붙은 복잡한 수학 공식은 현실 이해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 채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데 활용될 뿐이었다.
그나마도 경제학은 보고자 하는 것만 봤다. 경제학 모델에선 개인만 인정되고 집단과 제도는 수단·도구로만 다뤄졌다. 권력은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경쟁으로 모델화된 시장의 모습을 강조하며 경제를 권력이 없는 영역으로 간주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국 기업을 경쟁국으로부터 보호했던 국가의 ‘보이는 손(visible hand)’이 있었음엔 애써 눈을 감았다.
딛고 있는 영역이 넓지 않으니 한계도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정태분석에 집중했던 경제학은 동태분석이 필요한 혁신을 이해하는 게 버거웠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혁신의 영향을 미리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한 과제였다. ‘균형’에 집착한 나머지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이루므로 정책적 개입은 불필요하다”며 자신을 옭아매기도 했다.
경제학은 역사를 등한시함으로써 ‘후발자의 이점’마저도 스스로 걷어찼다. 책은 애덤 스미스부터 현대의 주요 경제학자들의 이론까지 300년 경제학사의 주요 사상을 되짚는다. 경제학이 다루는 세계를 넓히기보다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제한해 온 과정을 보면 안타까운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결점투성이인 주류 경제학은 폐기 처분의 대상일까. 저자는 아직 주류 경제학을 대신해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독립적인 이론이 등장하지 않은 점을 강조한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고치고 보완하는 쪽을 권한다. 구체적으로 정치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른 사회과학과 손잡고 역사에 기반을 둔 학문으로 변신할 것을 제시한다.
신랄한 비판에 비해 ‘완전체’ 경제학의 출현이라는 대전환을 꿈꾸는 모습이 낭만적이라는 인상을 버리기 어렵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결론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의 발전사와 학파별 주요 이론 및 한계를 한 권으로 두루 꿰뚫을 수 있는 것은 놓치기 아까운 장점임이 분명하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