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가 호황이라고요? 정말 문 닫기 일보 직전입니다.”
경북의 한 작은 양조장에서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A대표는 한숨부터 쉬었다. CU에서 곰표 맥주는 없어서 못 팔고, 제주맥주는 상장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수제맥주라고 다 같은 수제맥주가 아닙니다. 지금 웃고 있는 업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겁니다.”
수제맥주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제주맥주는 26일 시초가(4780원) 대비 2.51% 오른 4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최고가는 26.36% 오른 604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수제맥주업계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제주맥주의 상장을 두고 “다른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는 게 영세 수제맥주업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국내에서 면허를 받은 수제맥주업체는 약 160곳이다. 곰표 맥주를 만든 세븐브로이와 제주맥주 등 5~6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규모가 턱없이 작은 영세업체다. 편의점과 대형마트 납품은 꿈도 못 꾼다. 맥주를 캔이나 병에 담을 생산 설비 자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런 장비를 갖추는 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산 설비를 갖춰도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편의점에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팔려면 적지 않은 입점비와 판매 장려금 등을 부담해야 한다. ‘만원에 네 캔’이 일반화된 수입맥주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내걸려면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다.
편의점에 들어가지 못한 영세한 수제맥주 업체들은 케그(생맥주를 뽑을 수 있는 대용량 맥주통) 형태로 식당과 주점 등에 맥주를 공급해왔다. 코로나19로 외식사업이 무너지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수제맥주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도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선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지 않으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무늬만 수제맥주’만 남고 나머지 소규모 양조장은 수년 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퇴출위기에 몰렸던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진 이후 구독 서비스까지 도입하며 빠른 속도로 혁신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오명을 쓴 지 벌써 8년이 넘었다. 이런 오명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이 다양한 수제맥주를 접할 기회를 넓혀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세업체들의 온라인 판매 허용 주장을 세심히 살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