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로 길이를 잰 생선’ ‘A4용지만 한 수박’ ‘볼펜과 함께 저울에 올라간 홍게’.
화사한 상품 사진과 깔끔한 이미지가 대세인 온라인 세상에서 투박한 ‘B급 감성’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은 식품 쇼핑몰이 화제다. 마켓컬리나 쓱닷컴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엉성한 사진투성이다. 하지만 되레 꾸미지 않은 투박함이 소비자의 신뢰를 이끌어내고 있다.
‘B급 컬리’로 주목받은 농라
식품업계 공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식품중개몰이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이름은 농라. 네이버 카페로 운영되는 이 중개몰은 상품 사진부터 패키지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허술한 게 특징이다. 상품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기 일쑤고 구도도 엉성하다. 패키지는 스티로폼 박스에 테이프를 둘둘 감아 상품만 덩그러니 담겨 오는 게 전부다. 그래도 소비자들은 열광한다. ‘B급 컬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농라 카페는 2011년 개설됐다. ‘농산물·축산물·수산물 직거래 장터 나라’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농라의 운영자는 200평 남짓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는 매번 판로 확보에 애를 먹었다. 대형마트 입점은 꿈도 못 꾸고, 경매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았다. 풍작이 들어도 좌판을 깔고 파는 게 전부였다. 농라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운영자가 영세 소농인을 돕기 위해 만든 농식품 판매 중개 플랫폼이다.
진솔함에 가입자만 89만 명
농라는 상품을 매입하지 않고 영세 소농인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자 역할만 한다. 판매 게시글을 영세 소농인이 올리다보니 엉성하기 그지없다. 직접 잡은 생선을 이가 나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찍은 상품 사진이 그대로 올라온다. 자를 대신한 볼펜, 매직 사진도 흔하다. 어설프지만 진솔한 판매글이 오히려 믿음이 간다는 게 소비자들의 반응이다.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생산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소비자가 “오늘 물건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생산자가 “솔직히 오늘은 상(上)품은 아니다. 대신 어디서도 못 구할 가격이다”고 답하는 솔직함도 매력이다. 상품 가격도 대형마트와 견줄 만하다. 중간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산지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농라의 입점 수수료는 1년에 20만원 선으로 대형마트와 쇼핑몰에 비해 훨씬 낮다.
소비자들이 자진해서 올리는 상품 후기는 농라의 상품 품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라에는 하루 평균 1000여 개의 판매 게시글이 등재되고 200여 개의 상품 후기글이 올라온다. 질 좋은 상품에는 칭찬이 담긴 후기가 올라오지만 그렇지 못한 상품에는 신랄한 지적이 줄줄이 이어진다. 심각하게 상태가 좋지 않은 제품을 보내거나 무게를 속여 판 판매자는 회원들이 투표로 퇴출시킨다. B급 감성을 자극한 진솔한 판매 방식에 힘입어 농라 회원은 최근 89만 명까지 늘었다. 한 달 평균 거래액도 300억원에 달한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