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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말하기·쓰기 평가 못하는 수능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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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교육과정과 학교평가의 대안 탐색: 국제바칼로레아(IB)와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최근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에서 먼저 국공립학교에 시범 도입한 IB 교육에 대해 서울대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하고 이에 대한 공개 논의의 장을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IB는 1968년 스위스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 주재원 자녀들이 어느 국가에서든 양질의 교육을 받고 세계 어느 대학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된 국제 공인 교육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다.

서울대 교수진이 작년부터 진행해 온 연구 주제는 ‘대입 논술형 수능 체제 설계를 위한 평가 시스템 및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위한 기초 연구: IB 사례를 중심으로’이다.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논술형 수능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기존의 정답 맞히기 객관식 수능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 논술 몇 문항을 추가하는 수준으로 왜곡될까 우려돼, 서울대 교과교육 전공 교수들이 교과별 교육과정과 대입시험을 비교 분석해 논술형 수능에 대한 전문적 모델을 제안하고, 서울대에 이를 준비할 교원양성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해 보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지난달 30일 포럼에서는 이를 위해 교육과정 분석 결과를 1차적으로 발표했고, 논술형 수능과 교원양성 관련 내용은 조만간 2차 포럼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연구책임자인 송진웅 서울대 물리교육과 교수가 밝혔다.

포럼 내용 중 소영순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발표한 우리 대입 시험인 수능과 IB 대입 시험을 비교 분석한 내용이 흥미롭다.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이나 IB나 외국어로서의 영어 교과 목표는 말하기·쓰기·읽기·듣기 네 영역에서 의사소통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동일하다. 그런데 이런 역량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대입 시험은 매우 다르다.

우리 교육과정도 말하기·쓰기·읽기·듣기를 모두 측정한다고 돼 있지만, 수능에서 말하기와 쓰기 문제는 대화나 문장의 빈 칸 채우기 유형인데, 그것도 실제 쓰기나 말하기도 아니고 선다형 보기 중 정답을 고르는 간접 쓰기, 간접 말하기 형식이다. 당연히 실제 말하기, 쓰기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반면, IB 대입 시험은 예컨대 ‘친구가 낮은 성적에 상심해 밤낮없이 공부하는데 병이 날까 걱정이다. 친구에게 걱정하는 이유와 함께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제안하는 이메일을 써 보시오’ 또는 ‘학생들이 SNS 사용의 장단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할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보시오’ 같은 여러 문제 중 하나를 골라 90분간 영작하는 방식이다. 말하기는 지필 평가가 불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 앞에서 제한된 시간에 주어진 주제로 직접 말하고 답하는 시험을 녹음한다. 1차 채점은 교사가 하지만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중앙채점센터에서 교사의 채점을 일부 검토해 부풀리기를 했다면 전교 학생들의 점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내부평가를 외부평가와 병행해 최종 점수를 산출한다.

우리 영어 교육에서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제대로 기르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 읽기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나? 소영순 교수가 가장 최근의 수능 영어 기출문제와 IB 영어 기출문제 지문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IB의 영어 대입 시험에서 가장 고난도 독해 지문은 영어 원어민 9학년(중3) 수준인 반면, 우리 수능에서 고난도 독해 지문은 원어민의 16.3학년 수준(대학원)으로 어려웠다. 내용도 IB 지문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인 반면, 우리 수능은 지문 출처가 대학원 수준의 전문 서적이어서 영어 능력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준이었다. 즉 우리 영어는 말하기·쓰기 능력을 제대로 기르지 않으면서 읽기는 지나치게 어려워 결국 목표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평가되지 않는 능력은 길러지기 어렵다. 왜 우리 교육은 목표한 대로 평가하지 않는가. 기르고자 목표하는 능력은 평가하지 않으면서 우리 교육은 왜 모두를 엉뚱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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