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사진)이 4일 사퇴했다. ‘불가리스 코로나19 마케팅’ 사태가 발생한 지 21일 만이다.
홍 회장은 이날 서울 논현동 남양유업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자식에게 경영권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뜻도 처음으로 밝혔다.
홍 회장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2013년 물량 밀어내기 사건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논란 때 회장으로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살을 깎는 혁신으로 새로운 남양을 만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 번 믿어주시고 성원해주기 바란다”며 인사한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홍 회장이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힌 건 장남 홍진성 상무(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 회삿돈 유용 의혹을 받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상무는 회사 비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등교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이 제기된 지난달 보직 해임됐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불가리스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혼합해 원숭이 폐에 주입했더니 바이러스의 77.8%가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해 파장을 낳았다. 일부 언론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선 불가리스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남양유업의 주가도 치솟았다.
하지만 해당 연구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세종시는 남양유업 제품 생산의 40%를 담당하는 세종공장에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50년생인 홍 회장은 창업주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77년 남양유업 이사로 입사, 부사장을 거쳐 1990년 사장에 올랐다. 2003년 회장 취임 이후 ‘맛있는 우유 GT’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등 히트 상품을 내놨지만 이번 불가리스 파문까지 잇따라 구설에 올랐다. 남양유업은 이날 경영진 개편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선 발표하지 않았다.
남양유업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 가족으로 구성돼 외부 견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독단적인 지배구조부터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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