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싱가포르 센토사GC 탄종코스(파72·6740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경기를 마친 김효주(26)는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합계 17언더파로 동타를 기록 중이던 한나 그린(25·호주)이 16번홀(파5)에서 버디를 낚아채 단독 선두로 나서면서 김효주로선 우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서였다. 더욱이 그린은 1~3라운드 17번홀(파3), 18번홀(파4)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기록할 정도로 이 홀들에서 강했다. 이날 공동 8위로 출발해 버디만 8개를 몰아친 김효주로선 준우승도 아쉽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 그는 음식을 시킨 뒤 다른 선수들과 그린의 경기를 시청했다.
완전히 기울어진 줄 알았던 승부는 17번홀부터 급격히 김효주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린은 17번홀에서 약 2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며 무너지더니 18번홀에선 두 번째 샷을 그린 왼쪽으로 보내는 실수를 했다. 웨지 대신 퍼터를 꺼내든 그린은 파를 기록해 연장 승부를 펼쳐보자는 심산이었으나 퍼터로 친 세 번째 샷마저 홀을 한참 지나갔다. 그린이 약 4m 거리에서 친 파 퍼트마저 홀을 외면했고, 결국 동료들의 ‘축하 물세례’는 클럽하우스에 있던 김효주에게 쏟아졌다.
5년3개월 만에 우승…투어 통산 4승
김효주는 5타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앞세워 ‘골프 천재’의 부활을 알렸다. 그는 이날 4라운드에서 버디만 8개를 몰아쳐 8언더파를 쳤고,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해 그린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24만달러(약 2억6800만원).2014년 비회원 신분으로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김효주는 이듬해 JTBC 파운더스컵, 2016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매년 1승씩 수확했다. 하지만 이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다가 5년3개월 만에 투어 통산 4승째를 신고했다.
김효주는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 국내에 머물면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만 2승을 거둬 부활을 예고했다. LPGA투어만큼이나 치열한 국내 투어에서 지난해 상금왕(7억9713만원)에도 오른 그의 올해 활약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국내에 머무는 동안 비거리 증가 등에 중점을 둬 체력 훈련에도 몰두했다. 김효주가 30도를 훌쩍 넘는 싱가포르의 열기를 나흘간 거뜬히 견딜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동안 평균 244.70야드(2019년)에 그쳤던 드라이브 비거리는 올해 267.29야드까지 늘어났다.
올림픽 출전권 ‘굳히기’
김효주는 이날 페어웨이를 단 한 번만 놓치며 인공지능에 가까운 샷 감각을 뽐냈다. 그린 적중률도 88.89%(16/18)에 달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선두에 5타 차 공동 8위로 출발한 김효주는 5번홀(파5)과 6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시동을 걸었다. 8번홀(파5), 9번홀(파4)에서도 연속 버디를 낚아채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후반 11번홀(파4)에선 그린 밖에서 시도한 버디 퍼트가 홀 안으로 들어갔고 12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추가해 선두 그룹을 추격했다. 김효주는 14번홀(파4)과 15번홀(파3)에서도 연속 버디 행진을 벌이면서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14번홀(파4)에서 샷 이글을 넣은 그린이 단숨에 17언더파 공동 선두로 따라왔다. 16번홀 버디로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을 앞두고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 그린이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김효주의 우승이 확정됐다.
이 대회 전까지 세계랭킹 9위에 올라 있던 김효주는 다음 발표될 랭킹에서 순위가 급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는 6월 말 세계랭킹 기준으로 결정되는 도쿄올림픽행 티켓도 사실상 고진영(26)과 박인비(33), 김세영(28), 김효주 순으로 굳혀지는 모양새다.
박인비는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 린시위(25) 등과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유소연(31)은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6위를 기록했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4언더파 공동 24위, 디펜딩 챔피언 박성현(28)은 5오버파 공동 57위에 머물렀다.
조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