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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이 대세…홍콩 영화엔 ‘유통기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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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서지희 대학생 기자] 역주행이 대세다. 2월 한 유튜버가 쏘아 올린 위문 공연영상으로 재조명된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을 시작으로 인기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는 일명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시리즈가 인기몰이 중이다. 하지만 역주행 현상이 비단 노래에만 국한돼 나타나지는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가 여전히 빛을 발하거나, 시대를 앞서가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영화에도 어울리는 수식어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 영화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얼마 전 국내 OTT 서비스 왓챠가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타락천사> 등 왕가위 감독 작품들을 리마스터링 독점 공개했다. 재개봉 행진도 이어졌는데 다시 개봉해도 눈감아줄 명작인 일명 ‘개눈명’이 이미 극장가에서 통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금 봐도 재밌는 홍콩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유려한 명작엔 유통기한이 없다.

주성치표 코미디 활극 <소림축구>



쿵푸와 축구의 기묘한 만남이 인상적인 <소림축구>는 2002년 국내에서 개봉한 홍콩 코미디영화다. 주연 배우 주성치가 직접 메가폰을 잡고 연출해 더욱 주목받았다. 과거 잘나가던 축구 스타였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몸을 다쳐 축구계를 떠난 명봉(오맹달)이 신통한 쿵푸 재주를 부리는 씽씽(주성치)를 만나 무술 축구단을 꾸리며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특수효과가 다소 과하지만, 과장된 표현돼 오히려 코믹하다. <소림축구>는 2001년 38회 금마장 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2002년 21회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음향효과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주성치식의 B급 코미디 감성과 각각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다. 이들이 만나 재기발랄 유머 코드를 형성했다. 얼마 전 간암으로 별세한 오맹달은 홍콩 영화계의 신스틸러 감초 역할 전문 배우다. 주성치의 페르소나로도 잘 알려진 그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성치와 단짝 호흡을 이루며 여러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도성> 시리즈를 시작으로 <도학위룡> 시리즈, <서유기 월광보합>, <서유기 선리기연>, <희극지왕> 등 많은 작품을 함께하며 다져진 팀워크가 <소림축구>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한편, 씽씽은 구단을 꾸리기 위해 소림사에서 함께 무예를 다졌던 옛 동료들을 찾아간다. 차례로 이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웃음을 유발한다. 이때 이 영화의 묘미인 B급 감성과 이른바 ‘병맛’ 콘셉트가 눈을 사로잡는다. 코믹 연출이 민망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유쾌하고 즐겁다는 점에서 ‘길티플레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지만, 주인공들이 이루는 유쾌한 도약을 재밌게 풀어냈다.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는 퇴물 취급받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왕년의 축구 스타 명봉부터 소림사의 씽씽과 그의 동료들은 속세에서 백수, 비관론자, 돈벌레 등으로 변해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갔다. 그러던 그들이 모여 다시 본인들의 능력을 펼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관객에게 흐뭇한 미소를 안겨준다. 마치 중국 반환 문제로 혼란기를 거친 그 당시 홍콩에 건네는 격려 같다. 영화 전문 리뷰어 인플루언서 김민규 씨는 <소림축구>를 추억의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소림축구는 주성치라는 배우와 감독을 알게 해준 꽤 감명 깊게 본 작품”이라며 “다소 유치찬란한 장면이 많은 영화지만 주인공과 그의 형제들이 쿵푸와 축구를 보여주는 모습이 흥미롭고, 온고지신이라는 교훈을 새겨주는 코미디 영화로서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홍콩 누아르 부활 알린 <무간도>



<무간도>는 경찰과 범죄 조직의 스파이가 돼 서로를 속여야 하는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을 그려낸 액션 누아르 영화다. 경찰이지만 범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스파이로 잠입한 진영인 역은 양조위가 연기했다. 반면 범죄 조직 일원으로서 경찰 측 기밀정보를 얻기 위해 경찰로 잠입한 스파이 유건명 역은 유덕화가 맡았다. 긴장감 넘치는 서사와 숨 막히는 액션씬으로 흥행에 성공한 <무간도>는 2003년 개봉에 이어 속편 2부와 3부를 연달아 제작했다. 그리고 2003년 22회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무간도>는 <영웅본색>을 필두로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성행했던 홍콩 누아르 장르의 부활을 도모했다. 그러나 서사적 측면에서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전까지 홍콩 액션 영화에서 총격전이 의미하는 바가 컸다면, <무간도>에서는 총격씬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느끼는 긴장감을 묘사하기 위해 심리를 보여주는 클로즈업 기반의 쇼트가 많이 사용됐다. 그리고 블루 컬러 위주의 필터로 냉정함을 연출했다. 또한 두 남자의 숙명과 접점을 드러내는 장치인 오디오와 음악을 연결고리 소재로 활용했다. 오디오에 관심이 많은 두 주인공이 서로를 인식하게 된 공간을 레코드 가게로 설정함으로써 1편의 첫 장면과 3편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다.



<무간도>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 의리와 충성, 비장미를 강조했던 홍콩 액션 영화와는 달리 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고독함뿐이다. 오직 조직의 ‘대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가짜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야 하는 두 남자의 고뇌가 깊게 묻어난다. 어쩌면 사회 시스템의 희생양일지 모르는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잔잔한 호수에 인 파문처럼 고요한 외침으로 들려온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현대인의 고독함과 정체성 혼란을 이 영화가 대변해 보여주는 듯하다. SNS에서 영화 리뷰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양현욱 씨는 “한국 영화 <신세계>의 오마주가 된 작품이 바로 <무간도>”라며 “유덕화와 양조위의 만남이 흥미로웠고, 100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거듭되는 반전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웰메이드 간첩 누아르 영화였다”고 말했다.

장국영의 분신 <패왕별희>



<패왕별희>는 두 경극 배우가 맺어온 50년 지기 관계를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내면서 20세기 중국의 격변기를 그려낸 1993년 개봉 중국·홍콩 영화다. 천카이거가 연출을 맡았고 장국영, 공리, 장풍의가 주연을 꿰찬 작품으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치이며 떠밀리듯 살면서도 예술을 향한 집착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예술혼이 담긴 영화다.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라는 인물은 ‘육손’이었으나 어머니가 어릴 적 그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거세했다. 이는 <패왕별희>에서 중요한 장면인데, 손가락의 거세는 곧 그의 성 정체성 혼란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이후 그는 가장 가까운 동료 샬로(장풍의)에게 우정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데이는 동성애가 금기시됐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갖은 풍파를 겪기도 하지만 점점 극에 몰입하면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어 이의 일체를 이룩해 내는 경지에 도달한다. 어쩌면 사소한 손동작과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고 매혹적으로 표현해낸 장국영이라는 배우에게서 데이의 모습이 디졸브 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패왕별희>가 장국영의 분신이라는 느낌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전해지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힌 장국영이 2003년 4월 1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부재는 마치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충격을 안겼다. <패왕별희>가 장국영의 유작이 되면서 이 영화는 팬들에게 더욱 애틋하게 기억된다. 영화를 본 이여름(가명, 가톨릭대4) 씨는 “요즘도 가끔 영화 클립을 찾아볼 정도로 인상 깊은 영화였다”며 “격동하는 근현대 속에서 번뇌하고 갈등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시대 앞 개인의 무력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는 어린 시절부터 타의적인 삶을 산 캐릭터여서 더욱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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