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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로 느끼는 빛과 바람…한지의 '입체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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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사각형 모양의 한지 조각이 패널 위에 붙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5㎝ 높이로 서 있는 구조물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문풍지가 떨리는 모습 같기도 하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창호지가 빛깔을 달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지 고유의 색과 덧입힌 오방색은 고서(古書)부터 고운 노리개 색까지 마음속에 각인된 한국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군데군데 삐져나온 닥나무 섬유가 편안함과 정겨움을 더한다.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송광익 작가(72)의 ‘지물(紙物)’전이 열리고 있다. 수천 장의 한지를 물들이고 찢고 자르고 접고 붙이는 작업을 반복해 만든 추상 작품 30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작품의 장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조각과 수공예, 회화의 요소가 섞인 반입체 작품이라서다.

“어린 시절 방안에 누워 띠살문 사이에 발린 문풍지가 바람에 우는 소리를 기분 좋게 듣곤 했어요. 문에 붙은 한지는 집 안팎을 나누면서도 바깥 세계를 어느 정도 비춰 보여줍니다. 창호지로 스며드는 빛과 어른거리는 그림자, 얇은 종이의 떨림과 부딪침, 여기서 나오는 소리 같은 것들이지요. 그 투과성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송 작가의 작업은 마치 부지런한 농부가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는 것처럼 진행된다. 먼저 패널에 종이와 나무판을 붙이고, 나무판 사이 골을 만든다. 밭을 갈아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작업과 비슷하다. 여기에 한지를 손으로 찢거나 가위로 오리고 테이프를 붙인 조각을 하나하나 세워 심는다.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이 섬세한 작업을 수천 번 반복한다. 그의 ‘농업적 근면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립니다. 매일 오전 6시에 작업실로 나가 오후 8시에 돌아오지요. 20년간 그렇게 일했더니 허리와 목 등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작업하는 덕분에 조각 하나를 세우면서도 전체적인 조형의 변주와 색채의 조화를 계속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송 작가가 한지를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197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작품 장르를 바꿨다. 이전에 그리던 그림들이 ‘안 팔렸던’ 것도 아니다. 1980년 일본 유학 시절 일찌감치 현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2년 뒤 기타큐슈 국제 비엔날레에서 수작상을 받는 등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전에는 주로 그물에 덮여 있는 도시와 인간을 그렸어요. 당시 한국은 군사정권 시절이라 여러 억압이 존재했는데, 이에 고통받는 개인과 사회를 표현한 거지요. 하지만 민주화가 되고 해외의 여러 문물이 들어오는 등 억압이 해소되자 문제의식이 사라졌어요. 다른 작품 주제를 고민하다 한지를 발견했습니다. 종이는 부드럽고 유연해 인간 본연의 심성과 심상을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그중에서도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서양의 종이와 달리 바람과 소리가 통하는 느낌이 있어 특별한 매력이 있지요.”

한지의 물성과 아름다움을 탐구한 그의 작업은 외국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송 작가가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홍콩 솔루나파인아트(Soluna Fine Art)에서 연 개인전은 현지 언론이 꼽은 ‘지금 홍콩에서 꼭 봐야 하는 전시 10곳’에 포함됐다. 해외 컬렉터들은 “작은 한지 조각들의 질감과 형상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법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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