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세 번째 긴급사태가 선포된 첫날인 지난 25일. 점심시간대 긴자 중심가는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북적였다. 일식 도시락 전문점 유시마오기의 나쓰카와 씨는 “다들 위기감이 없어져서인지 손님이 전혀 줄지 않았다”고 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긴급사태가 수도권 3개 현으로 확대되고 기간이 2개월로 늘어나면 경제적 손실이 3조8650억엔(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긴급사태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세계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2일 기준 일본의 백신 접종률은 1.21%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꼴찌다.
일본 정부의 백신 확보 상황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화이자 7200만 명분을 비롯해 아스트라제네카 6000만 명분, 모더나 2500만 명분을 받기로 계약했다. 19일엔 화이자 백신 2500만 명분을 추가로 확보했다. 오는 9월이면 화이자 백신만으로 16세 이상 국민 모두가 접종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백신 접종도 한국보다 1주일가량 앞선 2월 17일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태껏 2회차 접종을 마친 의료종사자 비율이 10%에 불과하다. 고령자 접종을 완료하는 시점도 7월로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백신을 공급하고 접종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디지털화에 뒤처지고 재해 상황에서 평시 매뉴얼을 고집하는 일본의 약점이 이번에도 드러났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정부는 동등한 접종 기회를 제공한다는 원칙에 따라 1741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일률적으로 백신을 공급했다. 그 결과 같은 도쿄지만 도서지역인 아오가시마는 전체 주민의 2.9배에 달하는 물량을 받은 반면 세타가야구에는 고령자의 0.8%만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 공급됐다.
백신을 접종할 의료진이 부족한 지자체도 전체의 20%에 이른다. 영국은 훈련받은 일반인도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일본은 의사와 간호사만 주사를 놓을 수 있다. 치과의사와 의료자격증을 보유한 자위대원도 접종할 수 있도록 예외를 적용했지만 의료진은 부족하다.
우편으로 백신 접종 대상자에게 접종권을 배급하는 아날로그 방식도 접종률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접종 데이터 관리 역시 부실하다. 전국의 백신 접종 기록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VRS 시스템’은 입력 방식이 복잡해 의료진에게 외면받고 있다. 기존의 예방 접종 대장으로 전국의 접종 정보를 공유하려면 2~3개월이 걸린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