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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160년 이민史의 '미나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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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에 인천항을 떠난 지 20여 일, 최초의 해외 이민단 102명이 하와이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 13일이었다. 순식간에 달라진 기온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 이들은 짐을 풀자마자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월급은 16달러에 불과했다. 그래도 2년 뒤에는 이민자가 7200여 명으로 늘었다.

1905년 5월 4일에는 1000여 명이 멕시코에 도착했다. 이들은 선인장의 일종인 에네켄 농장에서 밤낮 없이 땀을 흘렸다. 영화 ‘애니깽’으로 잘 알려진 이들 중 300여 명은 1921년 쿠바로 재이민을 떠났다. 1963년 이후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까지 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에 앞서 1860년부터 수많은 농민이 기근을 피해 간도와 연해주로 대거 이주했으니 한인 이민역사는 160년이 넘는다. 연해주 한인들은 얼어붙은 땅을 개간해 밭을 일궜다. 논에 물을 채우고 벼를 재배하는 수전(水田)농법까지 성공해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렇게 해외에 정착한 동포는 180개국 750만 명에 이른다.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330만 명, 북미 280만 명, 유럽 69만 명, 중남미 10만 명, 중동 2만 명, 아프리카에도 1만 명이나 있다. 단일 국가로는 250만 명의 미국이 가장 많다.

이민자들의 첫 생존법은 사탕수수밭과 에네켄 농장의 막노동이었다. 그러다 점차 병아리 감별사에 눈을 떴다.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 덕분에 한때 세계 병아리 감별사의 60%를 한인이 차지했다. 일부는 세탁소와 봉제업으로 기반을 다졌다. 브라질 이민자들은 의류제조업에 진출해 남미시장을 장악했다. 호주 한인들은 청소부와 페인트·용접공으로 돈을 모았다.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작 ‘미나리’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 씨도 병아리 감별사 출신이다.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 ‘순자’ 역시 딸을 돕기 위해 태평양을 건넌 이민 1세대다. 이들의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꽃이 이제 세계 곳곳에서 만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부터 한인 이민사를 초중고교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멕시코 연방하원은 지난달 한인들의 첫 도착일인 5월 4일을 ‘한국 이민의 날’로 제정해 매년 기리기로 의결했다. 최빈국에서 태어나 사탕수수와 에네켄 농장을 거쳐 미나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낯선 타국에 뿌리 내린 이들의 삶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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