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를 10개월여 앞두고 잠룡들이 전초전을 펼치고 있다. 무대는 여의도 정가가 아니라 전국 서점이다. 대권주자들이 직접 작성한 에세이집부터 지인들이 집필한 ‘인물 소개서’까지 다양한 책이 베스트셀러 진입을 노린다. 도서 출판을 통해 인지도를 쌓으면서 선거 자금을 모을 수도 있어 대권주자들로서는 ‘1석 2조’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3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구수한 윤석열》은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책 가운데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책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이 언급한 윤 전 총장의 과거 이야기를 방송작가 김연우 씨가 정리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충암고 동창인 전직 기자 이경욱 씨가 쓴 《윤석열의 진심》은 정치·사회 분야 판매량 2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대외활동을 크게 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된 서적들이라 큰 관심을 모았다”며 “두 책 모두 온라인 판매 비율이 다른 베스트셀러보다 높아 도서 구입이 활발한 다독가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구매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출간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여성 군복무와 모병제 전환을 내세워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책에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담겼다. 모병제 전환에 따른 안보 공백은 남녀 모두 100일 동안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하면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잠룡들도 도서 출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총리 퇴임일인 지난 16일 에세이집 《수상록》을 출간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역시 각각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루는 책을 펴낼 계획이다.
대중 인지도를 쌓아야 하는 대선주자에게 도서 출판은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12년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은 ‘출판 정치’의 성공 사례로 회자된다. 이 책은 70만 권 넘게 팔리며 안 대표에게 ‘새로운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적 판매에 따른 수입도 매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재산신고에서 그해 《문재인의 운명》 특별판 인세로 1억5480만원의 저작권 수입을 올렸다고 신고했다. 《문재인의 운명》이 2011년 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초 출판 이후 누적 인세는 10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30만 권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