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km, 1000km… 전기차 업체들의 최대 화두로 '주행거리'가 떠올랐다. 당장 소비자들이 전기차 성능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주행거리를 눈여겨보면서다. 자동차 업체들도 최고 수준의 주행거리를 자사 전기차의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분위기다.
전기차 충전소 부족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주행거리는 물론 충전 인프라가 각 제조자들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2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 초 현대차 아이오닉5와 테슬라 모델 Y가 불 붙인 '전기차 대전'이 본격 막이 올랐다. 지난 1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유일하게 진행된 상하이 모터쇼에서 폭스바겐, 도요타,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앞다퉈 전기차 신차를 쏟아냈다.
현대차·기아는 자사 최초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EV6와 함께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도 최초 공개했다. 벤츠도 EQS, EQB를 잇따라 선보이며 전기차 신차 경쟁에 합류했다.
불붙은 주행거리 전쟁
전기차 경쟁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주행거리'. 업체들은 주행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작은 선발주자 테슬라였다. 미국은 워낙 넓다 보니 장거리 운전에 따른 충전 부담이 컸다. 충전소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1회 충전시 충분한 주행거리가 필수 과제였다. 이에 테슬라는 1회 충전시 663km(미국 환경청 측정 기준)까지 달릴 수 있는 모델 S 롱레인지 버전을 내놨다. 국내 인증 기준으로는 487km까지 내려오지만 여전히 500km에 육박, 국내에서는 서울~부산 등 충전 걱정 없이 웬만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잇따라 선보인 모델 Y 롱레인지의 주행거리는 500km 이상, 모델 3 롱레인지 주행거리도 496km에 달한다. 내년에는 1회 완충 후 836km를 달릴 수 있는 모델 S의 업그레이드 버전 '모델 S플레이드+'도 선보일 예정이다.
후발주자들은 테슬라를 잡기 위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뛰어들었다. 주행거리 500km는 이제 그다지 놀랍지 않은 수준이 됐다. 최근 벤츠는 국제표준시험방식(WLPT) 기준 770km의 주행거리를 확보한 럭셔리 전기차 세단 EQS를 공개했다. 국내 인증 기준으로는 좀 더 짧아지겠지만 이를 감안해도 현존 최장 수준의 주행거리다.
중국 지기자동차는 1회 충전시 1000km 달릴 수 있는 5도어 세단 L7를 상하이쇼에서 최초 공개했다. 미국GM도 한 번 충전으로 1000km 주행하는 전기차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현실화되면 한 번 충전해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올 초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로 500km 주행거리를 확보했다며 시장 기대치를 높였지만 아이오닉5, EV6의 주행거리가 각각 429km와 450km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공개한 제네시스 G80 파생전기차 G80e의 주행거리도 427km 수준이다.
충전 인프라 열악해 '주행거리 경쟁' 불가피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를 그만큼 많이 탑재하면 되지만 가격이 비싸진다. 업체들 입장에서 원가 상승을 감수하면서도 긴 주행거리를 내세우는 건 충전 인프라 문제가 크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려면 충전소가 확충돼야 하는데 아직 현실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소 보급 속도는 전기차 증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해외보다 한층 심각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구축된 전기차 충전기는 6만4188대로 전기차 100대 당 50기에도 못 미친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의 100대 당 충전기 수가 150~300기에 육박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는 누적 13만3962대로 집계됐다.
완충 시간이 30분 안팎인 '급속 충전기' 부족은 더 심각하다. 국내의 급속 충전기 개수(작년 말 기준)는 누적 9805대였다. 단순 수치로 계산해 보면 전기차 100대당 충전기 수가 7기에 그치는 셈이다.
이 격차는 올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목표 대수를 12만1000여대로 잡았다. 반면 급속충전기는 3000여대 확충할 계획으로 충전기 보급 속도가 더디다.
때문에 업계는 전기차 충전 경쟁에 불이 붙을 것으로 내다봤다. 벌써부터 테슬라, 현대차 등 전기차 선두주자들은 충전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 15일 전기차 급속 충전소 '이핏'을 개소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2곳에 각 6기씩 총 72기를 설치했다. 테슬라도 올해 전용 충전기인 슈퍼차저를 전국 27곳에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