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게 중요한 식량이지만 한국인에게 쌀은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을마다 벼농사를 지으며 공동체의 뿌리가 됐고,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은 간절함의 대상이기도 했다. 쌀 소비가 줄고 있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하루 평균 필요한 에너지의 30~50%를 쌀에서 얻는다.
갓 지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쌀밥의 ‘밥맛’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기밥솥이 흔해지고, 전자레인지에 1분이면 완성되는 즉석밥도 많지만 도정한 지 얼마 안 된 쌀을 잘 씻어 불린 뒤 짓는 밥의 매력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쌀의 품종도 다양해지면서 ‘밥 짓는 향’이 ‘고기 굽는 냄새’보다 더 매혹적이라는 미식가들도 있다. 쌀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밥 잘 짓는 법 따로 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벼 품종은 160종이 넘는다. 조선시대에도 27종이나 됐다. 원래 쌀을 거칠게 갈아 죽을 쑤거나 쪄서 먹다가 삼국시대에 솥에 쌀을 끓여 익히는 방법이 등장했다. 쌀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갓 지은 밥’. 입보다 먼저 눈과 코가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법은 따로 있다.‘밥 한 공기’를 담는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은 밥 한 공기에 180~190mL가 담긴다. 1990년대까지는 370mL가 평균이었다. 1960~1970년대는 560mL, 1940년대까진 680mL를 담았다.
‘밥 잘 짓는 법’의 첫 번째는 좋은 쌀을 고르는 것. 쌀알이 투명하고 윤기가 돌며 모양이 통통한 게 좋다. 쌀의 적정 수분은 14~16%다. 이 수분이 날아가지 않은 쌀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도정 기간이 가장 중요하다. 1~2개월 전 도정한 것이면 수분과 영양소가 충분히 들어 있다. 5~10㎏ 단위보다는 그때마다 1~2㎏ 단위로 소량을 사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쌀을 보관할 땐 산소를 차단해 냉장 보관하는 게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좋다.
쌀을 씻을 때는 첫물을 가급적 빨리 헹궈낸다. 도정 과정에서 쌀 표면에 붙어 있는 쌀겨 냄새가 씻는 동안 쌀에 밸 수 있다. 쌀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4~5회 씻은 뒤 30분 이내로 불린다. 더 불리면 영양이 빠져나가고 상할 수 있다.
밥을 지을 때도 공식이 있다. ‘20-5-10-15’다. 20분을 불리고 5분은 센불에, 10분은 약불로 끓인다. 이후 15분 정도 불을 끄고 뜸을 들이면 된다. 물의 양은 압력솥의 경우 쌀의 1.2배, 일반 냄비엔 1.4배가 적당하다.
○솥 하나에 담는 사계절
반찬 없이도 테이블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솥밥’이다. 일반 냄비보다 온도를 오래 지켜주는 솥은 흔한 쌀밥을 요리로 승화하는 마법을 부린다. 곱돌로 만든 돌솥, 흙으로 구워 유약을 칠해 만든 가마도상솥, ‘스타우브’나 ‘르쿠르제’ 같은 무쇠솥까지 다양하다. 다 된 밥을 조금 남기고 퍼낸 뒤 약불에 15분 이상 두면 노릇노릇 생기는 누룽지 역시 솥밥의 매력.솥밥은 고기와 해산물, 각종 채소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린다. 제철 봄나물을 넣어 지은 솥밥은 간장과 참기름을 살짝만 둘러도 호화로운 맛을 선사한다. 제철 주꾸미와 취나물로 만드는 솥밥은 쌀 2컵 기준 주꾸미 3~4마리, 취나물 60g으로 충분하다. 밥물을 낼 때 물에 다시마 한 장, 청주와 소금을 약간 넣으면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내장을 제거한 주꾸미를 밥, 취나물과 함께 넣어 끓인다. 주꾸미는 살짝 데친 뒤 건져내고 마지막에 밥 위에 올려 먹는다.
죽순 솥밥은 봄에 만날 수 있는 식탁 위 사치다. 죽순은 0.5㎝ 두께로 자르고 표고버섯, 갓을 가늘게 썰어 다시마 육수로 밥을 짓는다. 불을 끄고 뜸을 들인 뒤 잘게 썬 쪽파를 올려 먹는다. 솥밥은 잔멸치와 전복, 연어 등 해산물과도 잘 어울린다. 잔멸치를 밥 위에 올린 뒤 다시마를 넣고 밥을 지으면 반찬 없이도 누구나 좋아하는 감칠맛 나는 멸치솥밥이 완성된다.
‘굴 송이 솥밥’ ‘구운연어 솥밥’ ‘옥돔 솥밥’ ‘고등어 솥밥’ 등은 취향에 따라 요리할 수 있다. 솥밥은 간을 약하게 맞춘 뒤 달래간장으로 간을 하거나 백김치 등을 올려 먹으면 궁합이 좋다. 차돌박이, 닭고기 등으로 솥밥을 만들 땐 토마토를 넣으면 새콤한 맛을 더할 수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