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치매 치료제를 미국에서 내놓겠습니다. 임상 2상 중간 결과에서 약효를 확인했습니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사진)는 11일 기자와 만나 “올해 안에 미국 임상 3상 계획을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리바이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20년 이상 생명공학을 연구한 정 대표가 2010년 세운 신약 개발 기업이다. 원인별 맞춤형 치매 치료제를 내놓는 게 목표다.
치매는 암과 함께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대표 질환이다.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등 다섯 가지 성분의 치료제가 나와 있지만 두세 달 이상 투약하면 호전되던 증상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업계에서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 완화제’로 부르는 이유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사도 임상 3상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는 6월엔 FDA가 미국 바이오젠이 개발 중인 아두카누맙의 최종 심사 결정을 내린다. FDA 자문위원회가 지난해 이미 반대표를 던진 만큼 승인 가능성이 높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리바이오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로 개발 중인 AR1001의 미국 임상 2상에서 지난달 긍정적인 데이터를 얻었다. 경증 및 중등증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진행한 임상에서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심각한 부작용도 나오지 않았다. 정 대표는 “오는 7월께 12개월 투약 결과를 분석한 데이터가 나온다”며 “결과를 받는 대로 미국 임상 3상과 기술수출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치매 치료제는 다중기작 약물이다. 다중기작은 하나의 약물로 2개 이상의 표적 부위에서 치료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AR1001은 뇌신경세포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신호전달물질 다수를 자극한다. 정 대표는 “AR1001은 뇌세포로 외부물질이 전달되는 걸 막는 뇌혈관장벽(BBB)을 잘 통과할 수 있다”며 “환자 750명을 대상으로 할 임상 3상에선 다른 약물과의 병용 투여 효과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아리바이오는 내년 상반기 기술특례 상장에 나설 예정이다. 올 3분기 기술성 평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치매 환자의 10%에 해당하는 혈관성 치매에 AR1001을 사용하는 임상도 추진 중이다.
정 대표는 “암이 부위별, 크기별로 다양한 암종으로 나뉘듯 치매도 종류가 세분화될 것”이라며 “인공지능(AI)으로 치매 치료에 쓸 수 있는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약물들의 다양한 작용 기전을 밝혀내 치매 유형별로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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