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글로벌 법인세 개편안을 제시하면서 세계적인 ‘법인세 혁명’이 급물살을 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일, 프랑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일찌감치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주요 20개국(G20)은 올 중반까지 해법을 도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각국이 ‘재정 펑크’를 메우기 위해 다국적 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매출 발생국에서 세금 걷자”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약 140개국에 글로벌 법인세 개편안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글로벌 법인세와 정보기술(IT)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세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개편안은 두 가지다. 첫째,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으로 미국은 21%를 제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2.5%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둘째, 다국적 기업들이 실제 영업하는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산업 분야와 관련 없이 일정 기준의 수익과 수익률을 충족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해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00여 개 이상 다국적 기업이 (이 조치의) 대상”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논의 중인 디지털세의 확장판이다. 디지털세는 IT 대기업이 각국에서 올리는 매출의 일정 부분에 세금을 매기는 게 핵심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이 제시한 방안은 IT기업뿐 아니라 모든 다국적 기업에 적용된다. 미 재무부는 공문에서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별 법인세 달라 논란
미국이 이 같은 법인세 개편안을 낸 건 국가 간 법인세 출혈경쟁을 막고, 각국의 과세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전날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 연설에서 “30년간 이어진 각국의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며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정하기 위해 G20 회원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조세 회피를 위해 버진아일랜드 등 아예 과세를 하지 않는 ‘조세 천국’이나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본사를 옮기는 글로벌 기업이 많았다. 세계 각국도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였다.
미국이 증세를 추진하면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조3000억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법인세가 인상되면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두고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의 과세권을 강화하면 이런 우려를 줄일 수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세제 개편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불어났고 이를 메울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IMF가 최근 발표한 ‘2021 재정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쏟아부은 재정은 16조달러(약 1경8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결과 선진국의 평균 재정적자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2.9%에서 11.7%로 뛰었다. 신흥국은 이 비율이 4.7%에서 9.8%로, 저소득국은 3.9%에서 5.5%로 높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주요 경제국이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과세 개편에 동의하면서 관련 논의에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27개 유럽 국가 사이에서도 헝가리 9%, 아일랜드 12.5%, 프랑스 32% 등 법인세율 범위가 다양한 데다 조세피난처의 저항이 예상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