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이 잦은 A씨는 지난해부터 온·오프 여행보험을 통해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한 번 서비스에 가입하면 복잡한 설명과 인증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어서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기간에만 스위치를 켜듯 이용할 수 있다. 얼마전 회사 명의로 다른 보험에 가입할 때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법인 인감, 인감증명서 없이 본인 인증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에 5일가량 걸리던 절차가 대폭 단축됐다.
금융위원회가 도입한 금융규제 샌드박스 사업이 시행 2년을 맞은 가운데 이 같은 혁신 서비스가 다수 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4년(2+2년)간 규제를 완화해주는 이 사업을 계기로 올 상반기 새롭게 선보이는 서비스는 100건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등 다른 규제의 벽에 부딪히거나 기존 업권의 ‘텃세’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2019년 4월 1일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 후 2년간 139건의 혁신금융 서비스를 지정했다고 8일 밝혔다. 해당 사업과 관련한 인가와 영업 규제를 최대 4년간 유예·면제해준다. 78건의 서비스가 테스트 중으로, 올 상반기 108건(누적 기준)이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온라인 대출비교·모집 플랫폼, 안면인식 결제 서비스, 소상공인 비대면 신용카드 가맹점 가입 서비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금융위는 이달 혁신금융심사위원회를 열어 2년간 규제를 추가 유예해줄 대상 사업자를 재선정한다.
금융사와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은 혁신금융 사업에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지적한다. 기껏 규제를 면제받고도 또 다른 규제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부터 시행된 금소법은 비대면 영업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조항이 많아 사업자들이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는 게 업계 얘기다. 규제샌드박스 사업에 참여 중인 한 비대면 플랫폼 사업자는 “금소법 규제와 처벌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 법 위반이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와 노조의 보수적인 태도도 걸림돌이다.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대면 대환(갈아타기) 대출 사업은 샌드박스 사업으로 지정됐으나 은행들의 협조가 부족해 성과가 거의 없었고, 새 플랫폼과 거리를 두는 대형 금융사도 많다”며 “소비자 편의를 생각해 전 업권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규제샌드박스 1호인 알뜰폰 ‘리브엠’ 사업을 운영하는 국민은행은 노조 반발로 영업점에서 통신 서비스 마케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정소람/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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