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선실의 창으로 불빛이 하나둘 들어왔다. 마린시티 초고층 건물에서 나오는 밝은 조명과 인근 배들에 달린 등불의 은은한 빛이 이내 어우러졌다. 선체는 파도의 움직임에 맞춰 조금씩 흔들렸다가 곧 제자리 찾기를 반복했다. 하늘이 캄캄해질수록 마음은 더욱 고요해졌다. 서늘한 바람과 반복되는 파도의 리듬 속에서 창밖의 별을 바라보니 자연의 일부가 된 듯했다.
지난 6~7일 부산 수영만 마리나에서 체험한 ‘요트 스테이’는 이색적인 숙박 경험이었다. 미국 마이애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어느 뭍가인 양 파란 바다 위로 줄지어 늘어선 요트가 그리는 풍경이 새로웠다. 배 하나를 골라 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더욱 그랬다. 일상과 잠시 떨어져 낯선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듯했다. 요트 스테이를 비롯해 꼭 배를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요트를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요트업계의 얘기다.
하루 20만~40만원에 선주 체험
수영만 마리나는 요트 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국내 대표적인 장소다. 부산역에서 차로 30분 정도면 항만에 닿을 수 있다. 계류장 8곳에 나눠 정박돼 있는 요트는 약 300척. 이 중 50척가량은 영업용으로 쓰인다. 요트 스테이 가격은 계절과 배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박에 20만~40만원대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4인 규정을 지켜야 하지만 보통 8인까지 숙박이 가능하다.요트 스테이를 하면 배의 실내외 공간을 모두 프라이빗하게 쓸 수 있다. 갑판 위에는 빈백과 캠핑 체어, 해먹 등이 있어 원하는 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요트 스테이 운영업체인 요트탈래의 임채원 요트스테이 이사는 “해가 떠 있는 낮이나 일몰 시간에는 주로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가 많다”며 “그릴을 대여해 갑판 위에서 석양을 보며 바비큐를 즐기는 등 캐러밴, 캠핑 등에서 하던 활동도 대부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가 지고 나면 선실에서 ‘물 위의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기자가 묵은 일본산 요트는 내부가 낡은 목재로 꾸며져 빈티지한 느낌이었다. 널찍한 라운지(거실)와 조리가 가능한 주방, 창이 뚫린 휴식 공간, 침실 3개와 화장실 2개가 있었다. 라운지에는 노래방 기계, 보드게임 등 오락거리가 갖춰져 있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스피커, 히터 등이 있어 웬만한 글램핑(럭셔리 캠핑)보다 편하게 즐길 만했다. 캠핑장과 달리 배와 배의 간격이 떨어져 있어 다른 투숙객들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도 좋았다.
잠자리도 편안했다. 풍랑주의보가 발령됐지만 예상보다 선체의 흔들림이 크지 않았다. 침실 한 곳엔 패밀리 크기의 침대가 있어 아이를 둔 가족이 함께 자기에도 충분했다. 아침에는 요트에서 일출을 맞았다. 김건우 요트탈래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요트 스테이가 생소했지만 최근 캠핑과 함께 인기가 높아져 주말에는 거의 만실”이라며 “요트 안을 꾸며 프러포즈를 하거나 파티를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몰 투어·아동 요트교실도
요트 스테이 이외에도 요트를 즐길 방법은 많다. 부산 마리나에 있는 요트업체 20여 곳 중 상당수는 숙박 이외에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30명이 승선하는 퍼블릭 투어를 이용하면 해운대~광안리로 이어지는 코스를 1시간가량 돌아볼 수 있다. 인근 더베이101에서는 1인당 3만원가량에 투어를 진행한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간에 석양을 보려는 여행자가 많이 이용한다는 설명이다.가족이나 지인들끼리 소규모로 즐기고 싶다면 프라이빗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시간당 승선료는 배당 30만~40만원이다. 요트 스테이를 하면 15만~20만원의 추가 요금을 내고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마리나 주변에 있는 부산요트협회를 통해 요트 스포츠도 체험할 수 있다. 시민 요트학교, 어린이 요트교실클럽 등을 운영한다. 김정철 부산요트협회 부회장(체육학 박사)은 “요트를 ‘귀족 스포츠’라며 멀게만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며 “작은 1인용 요트(딩기)는 이틀 정도면 조작법을 배울 수 있고, 별다른 추가 비용 없이 바다에서 홀로 스피드와 파도를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취미”라고 설명했다.
최근 바다에서 장례를 치르는 해양장(海洋葬)도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에코 다잉(eco-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수목장과 더불어 찾는 사람이 증가했다. 임채원 이사는 “해안에서 5㎞ 이상 나가 바다 위에 골분을 뿌린다”며 “매년 기일에 가족끼리 장례를 치른 곳까지 요트를 타고 가 망자를 추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산=정소람/정지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