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SMIC)가 대만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붙잡기 위해 연봉을 450% 올리는 등 파격적 특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SMIC가 최근 발표한 2020년 연간보고서를 분석해 이 회사가 지난해 량멍쑹 공동 CEO에게 연봉 153만달러(약 17억원)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19년의 34만1000달러(약 3억8000만원)보다 450% 증가한 것이다.
SMIC는 또 량 CEO에게 회사 주식 25만9800주와 2250만위안(약 3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제공했다. SMIC의 전일 상하이증시 종가인 58.31위안을 대입하면 량 CEO에게 지급한 주식은 1515만위안(약 25억8000만원)에 달한다.
SMIC는 량 CEO의 연봉을 왜 큰 폭으로 인상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SCMP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로 위협받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인재 영입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량 CEO는 지난해 12월 사직 의사를 밝혀 글로벌 반도체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인 대만 TSMC에서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일했으며, 2011년 삼성전자로 옮겼다가 2017년 SMIC로 이직했다.
량 CEO가 이직해온 이후 SMIC는 14㎚ 공정에서 제품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TSMC나 삼성전자의 7㎚ 이하 공정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세계 2류 수준까지는 올라온 것이다. SMIC는 현재 7㎚ 이하 공정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량 CEO가 지난해 말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SMIC가 같은 TSMC 출신의 선배 엔지니어 장상이를 자신보다 높은 부회장으로 영입하자 사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자오하이쥔과의 불화설도 제기됐다. SMIC의 이번 연간보고서를 보면 량 CEO의 임기가 내년 주주총회까지로 명시돼 있다.
SMIC는 연간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141.5% 늘어난 43억3200만위안(약 744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4.8% 증가한 274억7100만위안(약 4조7195억원)이었다. 전세계 반도체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올해도 실적 호전은 지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SMIC의 주가는 미국 국채 금리 안정과 반도체 수요 확대 전망에 이달 들어 7% 넘게 뛰었다.
다만 미국의 제재로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장비나 재료, 소프트웨어 등을 구매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를 받고 있어 최신 공정 개발에선 계속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라고 SMIC는 덧붙였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