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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인지적 게으름' 벗어나려면…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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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인지적 게으름' 벗어나려면…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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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뜨겁던 1949년 8월 어느 날 오후, 미국 몬태나주 맨굴치 산 정상에 소방대원 15명이 낙하했다. 협곡 너머의 불길을 끄기 위해서였다. 미주리강을 향해 경사면을 400m쯤 내려가던 대원들은 불길이 협곡을 넘어 자신들을 향해 맹렬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대장이었던 와그너 도지는 대원들에게 “능선 위로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지금은 불과 싸울 때가 아니라 도망갈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 대원들은 8분 동안 허겁지겁 후퇴했지만 도지는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성냥불을 켜 풀밭에 던졌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외쳤다. “이리 와! 이리 오란 말이야!” 하지만 대원들은 이를 무시한 채 필사적으로 정상으로 향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원 12명은 끝내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남은 3명 중 2명은 불길보다 먼저 능선에 도착해 목숨을 구했다. 나머지 한 명, 대장 도지는 자기 앞에 있는 풀을 스스로 태워버린 뒤 물을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재만 남은 공간에 납작 엎드려 15분을 버틴 끝에 생존했다. 화마의 먹잇감을 미리 없애버림으로써 불길의 강도를 누그러뜨려 안전공간을 만든 ‘맞불 놓기’였던 것이다.

무엇이 이들의 생사를 갈라놓았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인간의 ‘인지적 게으름’을 든다. 사람들은 새로운 걸 붙잡고 어렵게 쩔쩔매기보다는 기존의 의견이나 생각에 안주하기 손쉬운 쪽을 자주 선택한다는 것.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이 깊이 신봉하는 어떤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는 데 대해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만일 12명의 소방대원이 1인당 9~11㎏에 달하는 소방장비를 버리고 갔다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저자는 확언한다. 하지만 대원들은 소방장비를 버리는 건 소방관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애덤 그랜트는 《싱크 어게인》에서 이런 이야기와 함께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믿음과 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또 의심하라고 강조한다. 확신의 편안함보다 의심의 불편함을 선택해 ‘다시 생각하기’의 가치를 숙고해야 한다는 것.

책은 기존의 의견과 관행에 안주하며 손쉬운 쪽을 선택하는 대다수의 일반적 성향은 빠르게 격변하는 세상에선 적절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도지의 목숨을 구했던 ‘정신적 유연성’에 대해 다룬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창궐을 통해 많은 이들이 정신적 유연성을 테스트하게 됐다고 말한다. 병원에 가는 것,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 조부모 및 부모와 포옹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걸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코로나19는 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적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두 가지 기술을 강조한다. ‘다시 생각하기’와 ‘의심하기’다. 과거 전향적인 생각을 하던 기업가가 왜 덫에 걸리고 말았는지를 통해 두 기술을 적용하지 못해 실패한 사례를 이야기한다. 또 치열하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더 높은 창조성을 갖게 된 사람들 이야기도 들려준다. 오랜 기간 공직에 도전했던 후보자가 왜 자기 업적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면증후군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보게 됐는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왜 자기가 틀렸을 때 오히려 기뻐했는지, 세계 최고의 예측가들이 자기 견해를 어떻게 업데이트하는지 등…. 이를 통해 저자는 “누구나 두 기술을 자신에게 적용해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생각하는 기술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도지가 죽은 대원들에게 ‘다시 생각하기’의 필요성을 깊이 설득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고의 유연성과 기민성을 촉발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국제토론 챔피언이 토론에서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지부터 흑인 연주자가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어떻게 설득해 증오를 내려놓게 했는지, 뉴욕 양키스의 팬을 설득해 레드삭스를 응원하게 만드는 비결까지 소개한다.

그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다시 생각하기’란 자기 자신과의 소통, 세상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기술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과도한 확신 사이클에서 벗어나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인지 아는 게 바로 지혜”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정치적 양극화 같은 복잡한 문제 앞에서 세상을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 기존 관행에 도전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세상은 진화하게 된다”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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