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시는 금광이나 마찬가집니다. 다만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는 하루 1400건이 넘는 공시가 쏟아진다. 주요 상장사와 비상장 기업의 핵심 정보가 이곳에 모인다. 조호진 ㈜타키온월드(타키온) 대표(사진)는 “공시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다 보니 투자자가 신경 쓰지 않는 정보가 태반”이라며 “포크레인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이 옥석을 가려낼 수 있다”고 전했다.
타키온은 전자공시시스템을 기반으로 핵심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방대한 양의 공시를 실시간으로 추려낼 수 있는 것은 자체 AI 솔루션 ‘TMR(Tachyon Mining Robot)’ 덕분이다. TMR은 약 1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데이터마이닝(대용량 정보 추출)과 분석 기능을 갖추게 됐다. AI가 신규 공시를 확인하고, 임원의 주식 변동 내역이나 기업의 지분 확대 등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스스로 정제해 내놓는다.
제공하는 서비스만큼이나 조 대표의 이력이 독특하다. KAIST와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일간지에서 과학·산업 분야 기자로 10년을 활동했다. 조 대표는 “기업을 취재하다 보니 공시 정보야말로 접촉이 어려운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근무했던 KAIST 동기 조경호 타키온 최고기술경영자(CTO)가 큰 힘이 됐다.
타키온은 AI가 분석한 공시를 기반으로 보고서를 낸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이 주요 고객이다. 지난달 내놓은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의 주식 대량 보유 내역 분석 보고서는 자본시장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 부회장의 자사 주식 매도 동향을 분석해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수사 이전 시점에서 SK그룹주 매도 시점을 예측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KB금융 지분 확대 동향 7년 치를 분석한 보고서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임원진 지분 변동 내역을 분석한 결과물도 관심을 끌었다.
조 대표의 다음 타깃은 특허와 법률 정보다. “공시만큼이나 기업 주가에 영향을 끼칠 정보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조 대표는 “특허정보검색서비스(Kipris)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잘 뜯어보면 주가 상승과의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며 “타키온 AI를 고도화시켜 AI가 스스로 법률의 의미까지도 찾을 수 있도록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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