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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진가 몰라본 투자자들…숱한 경험이 되레 毒 됐다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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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망의 19세기를 2주 앞두고 병상에 누웠다. 당시 67세. 고열에 목의 염증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어지자 주치의들은 망설임 없이 피를 뽑아내는 ‘사혈’을 단행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시작된 사혈은 여러 세대에 걸친 임상 경험을 통해 정착한 치료법으로, 당시까지는 질병 치료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12시간 동안 체내 혈액량의 절반 가까이를 뽑아낸 워싱턴은 몇 시간 후 사망했다.

일반인은 물론 의학 전문가들까지 왜 오랫동안 사혈을 만병통치약으로 믿었을까. 사혈은 처음부터 인체 구조와 질병의 원리에 관한 부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필요한 도구도 방법도 없던 당시에는 ‘질병은 체액의 불균형 때문에 생기며 사혈이 그 균형을 찾아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경험의 오류였다. 사혈로 죽은 자들은 말이 없기에 치료 경험에서 배제됐다. 반면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생생히 담긴 회복의 집단 경험은 사혈요법을 맹신하게 했다.

경험은 우리 삶 대부분의 측면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데 분명 많은 도움을 준다. 문제는 사혈의 경우처럼 경험이 항상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 의사결정학과 교수인 로빈 M 호가스와 행동과학자 엠레 소이야르는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학습하고 사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쓴 《경험의 함정》은 경험이 우리 삶의 친구이자 스승이 아니라 사기꾼이자 적이 되는 사례들을 통해 유능한 이들조차 어떻게 경험에 속아 착각에 빠지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원래 경험은 오랜 세월 인간의 정체성과 행동을 좌우하며 생존을 도와준 든든한 아군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경험을 숭배해온 사회 속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의 어두운 면과 경험의 부작용을 보지 못한다. 책은 이런 대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들은 경험에 속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한 여러 사람과 기업들을 예로 든다. 1990년대 후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근간이 된 검색 방식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신기술의 가치로 160만달러(약 17억7000만원)를 제안했으나 기업 투자자와 인터넷 전문가들은 모두 거절했다. 1970년대 후반 사무기술 분야 거대기업이던 제록스의 연구원이 아이콘과 마우스를 갖춘 첫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반면 이 컴퓨터를 본 젊은 스티브 잡스는 핵심 내용을 초기 애플 컴퓨터에 응용해 대성공을 거뒀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명성이 자자한 편집자와 출판사로부터 열두 번이나 원고를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인터넷과 검색엔진 분야 전문가들의 경험은 구글의 잠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제록스 경영진의 경험 역시 개인용 컴퓨터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길잡이가 되지 못했다. 출판사들의 경험 또한 오늘날 《해리포터》의 세계적 돌풍을 앞서 읽어내지 못했다. 모두 한 분야에서 경험이 많을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저자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이 많고 지식이 깊어질수록 시야와 접근 방법은 경직돼 예상치 못한 기회를 알아보는 데 방해가 된다”며 “혁신 그 자체가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불러오는 주요 동력이기 때문에 획기적 아이디어일수록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재단할 경우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또 경험이 쌓일수록 ‘능숙함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기업의 운명이 뒤바뀌는 정보기술(IT) 분야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일수록 경험에 갇혀 늘 하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의외의 독창적 요소를 알아차리고 기회로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

경험과 그 경험을 얻는 환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의 틀 밖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들은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속일 수 있다”며 “의사결정 주체로서 경험에서 얻는 교훈을 ‘결론’이 아니라 차차 검증해야 할 ‘가정’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경험을 통해 놓친 것은 무엇인지, ‘무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제기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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