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 반도체산업의 자존심 인텔의 입을 빌려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본국 생산시설을 확충할 것”이란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21세기의 석유’ ‘전략무기’로 불리는 반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평가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미국 인텔의 팻 겔싱어 대표(CEO)는 24일 온라인 미디어브리핑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인텔은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팹(공장)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이다. 가동 시기는 2024년으로 예상된다.
인텔의 발표 뒤엔 미국 정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겔싱어 대표는 이날 “대부분의 반도체 생산시설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며 “미국, 유럽에서도 제조 역량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이란 표면적인 사건보다는 미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미국 정부의 핵심 이니셔티브(행동계획)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강대국의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이 쏟아지면서 반도체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내몰린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힘든 싸움을 이어가게 됐다. 당장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중·장기 사업 전략을 고민해야 할 총수의 부재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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