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 땅투기 의혹을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다. 투기도 투기지만 진짜 문제는 부실·방만한 공기업 그 자체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온 ‘공기업 혁신’ 노력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성 강화’로 흐지부지되면서, ‘감시받지 않는 공룡’이 된 공기업이 빚은 참사로 봐야 할 것이다. 투기를 차치하더라도 천문학적 부채, 낙제 수준의 경영, 사내복지 천국을 만든 도덕적 해이, 이를 견제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낙하산’ 감사 등 공기업의 난맥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525조원(2019년)에 이르는 337개 공공기관 부채는 언젠가는 정부가 메꿔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라경제의 큰 복병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새 25조원 급증했다. 한국전력 132조원, LH 126조원, 도로공사 30조원 등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지난해 사업으로 21조원을 번 LH는 지출이 45조원을 넘겼으니 부채가 줄어들 리 만무하다. 이미 국가부채에다 공기업 부채와 4대 연금 충당부채를 합친 광의의 국가부채비율이 GDP의 106%에 이른다는 분석(한국경제연구원)도 있다.
그런데도 허리띠 졸라매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상생협력 등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현 정부 들어 9만4700명(29%) 증가했다. 반면 36개 공기업의 작년 신규 채용은 거꾸로 31.8% 줄어 청년들을 낙담케 했다. ‘그들만의 복지 천국’에서는 적자가 나도 성과급 잔치이고, 사내복지기금은 싼 이자 대출 재원으로 전용되기 일쑤다. 이를 감시·견제해야 할 감사 자리는 친여 시민단체와 정치인 출신 ‘낙하산’들로 그득하다. 주요 공기업 36곳 중 약 60%인 21곳을 낙하산 감사가 차지했다. 취임 초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던 문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하다.
정책 집행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기업들이 가히 복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에도 부실·방만경영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가 공공개혁에 나서고 공기업도 자정노력을 펴곤 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선 그런 시늉조차 없다. 곪을 대로 곪은 환부를 수술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나라를 삼킬지도 모를 일이다. LH 사태로 촉발된 공직자 투기 의혹 규명 못지않게 복마전 공기업에 대한 근본 개혁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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