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 영업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회 가능 상품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소비자 편의성은 확대되지만 선택의 폭이 오히려 좁아질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약 철회 상품 '확대'…"소비자 선택 폭 좁아질수도"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주요 골자는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판매규제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의미한다. 가장 큰 특징은 청약 철회 상품이 확대됐다는 점이다. 주가연계펀드(ELF), 주가연계증권(ELS)의 경우 목표수익률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고정 수익률을 제공하는 ELF나 ELS는 모집기간에 청약철회 기간이 추가되면서 15일 동안 투자를 못하게 된다"며 "시장 변동성이 큰 경우엔 확정된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지는 만큼, 상품 출시 과정이 많이 변경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상품출시 수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객들에 상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상품 판매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 철회 등 설명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늘어나면서 고객 응대하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체적으로 상품 판매 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금융회사들의 영업활동이 위축돼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사는 소비자의 재산 상황과 투자성향에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할 수 없다. 소비자가 자신의 위험등급에 맞지 않는 상품에 관심을 가지면 은행은 적합성 원칙에 따라 설명서 등의 기본정보도 제공하면 안 된다.
최근 '동학개미운동' 열풍이 거센 가운데 고수익을 적극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겐 입맛에 맞는 상품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모펀드 관련 제재로 펀드 판매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한 상황에서 앞으로 펀드 등 고위험 상품의 취급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대출도 2주내 철회가 가능해지는 만큼, 장기 대출이 단기 대출로 이용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소비자가 대출에 대한 철회권을 행사하면 이를 은행이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 내부에서도 단기대출 이용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소비자는 대출이 필요한 기간과 최적의 금리를 찾아보고 대출을 실행한다"며 "2주 내 취소하더라도 해당 금액에 대한 이자는 납부해야 하는 만큼 단기대출로 이용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출성 상품은 의사표시와 함께 이미 공급받은 금전·재화와 이자, 수수료 등도 반환하는 게 원칙이다.
금융사 처벌수위 높아지지만…세부기준 없어 '혼란'
금소법이 시행되면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처벌수위도 대폭 높아진다. '6대 판매규제'를 위반할 경우 관련 상품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고 과태료도 최대 1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불완전판매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인 '위법계약해지권'도 도입된다. 금융사가 6대 판매규제를 위반하는 등 정당한 해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 또는 위법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위법계약해지권을 청구할 수 있다.
금융사는 불완전 판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될 경우 고의·과실이 없다는 점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징벌적 과징금을 물게 되는 등 민·형사·행정상 처벌을 받게 된다.
문제는 금소법 시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시행 세칙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 혼란스럽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고객이 위법계약해지 보상을 요구했을 때 은행이 보상해야 하는 범위가 모호하다. 현재까지 예금, 펀드 등 상품별로 중도해지 수수료가 각각 다른데 얼마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지 규정이 없다.
세부적으로 카드사들이 신용·체크카드 상품 소개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카드 신청하기' 아이콘을 만들어놓는데 금소법이 시행되면 이 행위가 광고인지, 상품 권유인지 애매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어수선하다"며 "법 시행 8일전에 감독 규정이 발표되면서 실무에 적용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 등 사전 방지에 '촉각'
우선 금융사들은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사고와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주요 시중은행들은 모든 금융상품 판매 시 고객과 상담 내용을 녹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존엔 고난도 상품이나 부적합 투자자, 고령 투자자에 한해서만 설명 과정을 녹취했으나 금소법 시행에 따라 녹취 대상을 '모든 고객'으로 확대한다. 또 영업점 창구 직원을 비롯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불완전판매 사전 차단과 악용을 막기 위해 관련 조직을 신설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기존에 운영하던 소비자보호부서를 '소비자보호부'와 '소비자지원부'로 나눠 전문화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상품심사감리부를 신설했으며 미래에셋대우는 금융소비자보호팀을 본부로 승격시켰다.
보험업계도 소비자 보호 강화에 분주하다. 삼성생명은 이미 올해 초 최고경영자와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직속 조직으로 전무급의 소비자보호실을 신설했다. 한화생명은 금소법에 대비한 금융소비자보호규정을 제정하고 시행 중이다. 또 전국 7개 지역본부에서 민원처리 담당제로 운영되던 조직을 소비자보호센터로 전환했다.
이지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역은 "금소법은 금융소비자의 권익 신장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 차원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금융회사, 금융당국, 금융소비자 모두가 금소법을 통한 건전한 금융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빛/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