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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양·음력 혼용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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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국경일이 있듯 한 집안에도 잊어서는 안 될 행사와 기념일이 있다. 연말에 달력이 들어오면 우선 집안의 제삿날을 먼젓번 달력에서 새 달력에 옮겨 적는다. 그다음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과 어머니의 생신, 형제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는 형제 모두 아버지 제사와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여러 시간 자동차를 타고 시골집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 생신 역시 잊지 않고 시골집에 모여 식사하고, 그날 하루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설날이나 추석처럼 스무 명 넘게 대식구가 모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의 생일도 전화로나마 서로 챙기게 되고, 우리 집에서도 내 생일을 제법 큰 기념일처럼 챙긴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일을 챙기듯 이제는 성년이 된 아들들이 내 생일을 내가 부모님 생일을 챙기는 것처럼 챙기는 것이다. 나도 아내의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며, 아내 역시 내 생일이면 나에게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게도 꼭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런 걸 보고 자란 아이들도 어릴 때 나에게만 축하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해 ‘우리 아빠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드렸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가족 간에 생일을 서로 기념하고 그날을 다른 날보다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단지 어떤 기념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생일은 바로 내가 이 세상에 온 날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에 온 날이라 단순히 그 날짜를 기념하기보다 이 세상에 온 내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생일을 맞이하는 식구들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서이다.

아이도 어른도 집안에서 대접받는 사람이 밖에서도 대접받는다. 또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남들도 귀하게 여긴다. 그게 나든, 아내든, 아이들이든 생일은 바로 그런 귀한 존재가 이 세상에 온 날이고, 서로 귀한 생각과 귀한 대접을 통해 스스로 자신이 귀한 사람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런 귀한 존재로서 자신과 세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집안의 제사와 생일을 챙기다 보니 거기에 약간의 혼돈이 있다. 제사는 예전에 어른들이 챙기던 방식 그대로 음력날짜로 모신다. 부모님 생신과 우리 형제의 생일은 예전에 부모님이 챙겨주시던 방식 그대로 음력날짜로 기념한다. 그런데 저마다 결혼기념일과 아이들의 생일은 당연히 양력날짜로 챙긴다.

아이들도 이게 적잖이 혼란스러운가 보다. 어느 해는 아버지의 생일이 4월 초였는데, 어느 해는 3월 중순이 되기도 한다. 중간에 음력으로 윤달이라도 들면 그해는 생일이 5월로 넘어가기도 한다. 예전에 해방 무렵 국한문 혼용세대의 어른들이 계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세대가 바로 그런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 낀 양·음력 혼용세대라 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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