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포화 상태인 가요계에서 각 그룹이 고유한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멤버들은 물론 각 기획사들은 팀의 '아이덴티티'를 두고 고심한다.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심오한 세계관을 입히기도 하고, 독특한 콘셉트를 이용하거나 유명 작곡가의 곡을 공수하며 다방면으로 음악적 변화를 주기도 한다.
개성을 앞세운 치열한 K팝 시장에서 오히려 꾸준하고 묵묵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팀이 있어 눈길을 끈다. 매 컴백마다 성장 이상의 발전을 증명해내는 온앤오프와 에이티즈다. 시원함과 강렬함, 이들의 곡을 번갈아 듣다 보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한 기분 좋은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된다. 물과 불을 보듯 팀 컬러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두 그룹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공통점은 상당한 음악적 단단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쉬지 않고 성장을 거듭하는 멤버들 자체가 훌륭한 자원임과 동시에 원석의 가치를 최대로 이끌어내주는 굿 프로듀싱이 뒷받침되었기에 이들의 시너지는 배가 됐다. 온앤오프에겐 모노트리 황현이, 에이티즈에겐 이든이 '음악의 아버지'로 든든히 자리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아온 호흡은 이내 팀의 색깔이자 도약의 발판이 됐다. 이보다 짜릿하고 행복한 음악적 시너지가 또 있을까.
◆ 일찌감치 명곡맛집…온앤오프, '온리 원'이 되는 길
온앤오프는 K팝 팬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명곡 맛집'으로 불렸다. '사랑하게 될 거야', '컴플리트', '스쿰빗스위밍' 등의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들까지 입소문을 타며 점차 팬덤을 넓혀갔다. 이들은 데뷔 때부터 프로듀싱팀 모노트리의 황현과 함께 해왔다. 최근 활동을 마친 '뷰티풀 뷰티풀' 또한 황현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황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온앤오프에겐 없어서는 안 될 음악의 근간이 되어주고 있다.
온앤오프의 가장 큰 매력으로는 청량하고 시원한 분위기가 꼽힌다. 올해로 벌써 5년 차인 이들에게는 여전히 '신선하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뷰티풀 뷰티풀' 활동을 하면서도 K팝 팬들은 온앤오프 표 음악에 담긴 생생한 에너지와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멤버들에 감탄했다. 희망찬 내용의 청춘 찬가는 온앤오프의 개성과 분위기를 십분 살려냈다. 컴백 때마다 놀라울 정도의 '변화'를 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트렌디한 변주를 가미한다.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도 이를 색다르게 풀어가는 황현의 프로듀싱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온앤오프와 황현의 호흡은 Mnet '로드 투 킹덤'을 통해 대중에 제대로 각인됐다. 황현의 손길로 매회 온앤오프의 장점을 극대화한 고퀄리티 편곡 무대들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대중성은 물론, 탄탄한 음악적 완성도까지 인정받으면서 온앤오프는 '로드 투 킹덤'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로드 투 킹덤' 이후 성장세는 더 두드러졌다. 미니 5집 '스핀 오프'를 거쳐 정규 1집 '온앤오프 : 마이 네임'까지 단계적으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첫 번째 정규앨범으로 데뷔 이래 가장 높은 초동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타이틀곡 '뷰티풀 뷰티풀'로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소속사 선배 오마이걸이 계단식 성장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팀이기에 향후 행보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겠다는 이들의 외침이 묵직하게 귀에 꽂히는 이유다.
◆ 에이티즈, 국내로 옮겨 붙은 화력…'킹덤'서 만개할까
온앤오프가 시원하고 에너제틱한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뜨겁고 파워풀한 분위기는 에이티즈가 잡았다. 특유의 강렬한 음악색,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퍼포먼스는 단숨에 해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딥하고 컨셉추얼한 에이티즈의 무대는 타 아이돌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해적왕', '세이 마이 네임', '웨이브', '앤써', '인셉션', '땡스' 등 이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뜨거운 열정을 표현해내는데 탁월하다.
에이티즈만의 확실한 개성은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얻었다. 데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투어를 진행해 전석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케이콘'에서 '한국어 떼창'이 터져 나오는 장관을 만들어낸 것 또한 에이티즈였다. 코로나19로 아쉽게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해 아레나 투어 역시 티켓이 매진을 기록하며 이들의 글로벌 기세를 실감케 했다.
활로를 국내로 돌린 에이티즈는 여섯 번째 미니앨범을 내며 다시금 실력을 입증해냈다. 타이틀곡 '불놀이야'는 에이티즈의 강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구현해냈다. '불놀이야'를 비롯해 앨범 전곡을 이든의 프로듀싱팀 이드너리가 총괄했다. 이든은 에이티즈의 데뷔 전부터 줄곧 전담 프로듀서로 함께 하고 있다. 에이티즈가 실력파 아이돌로 거듭나기까지 이들 음악의 뿌리인 이든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홍중, 민기 등도 이든과 함께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음악적 역량을 넓혀가는 중이다.
앞서 에이티즈는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인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든을 언급하며 "항상 '이런 음악, 무대를 하자'가 아니라 '에이티즈가 잘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자'고 이야기했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든 또한 과거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에이티즈를 시작할 때 업계에서 기대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피드백을 해주는 팬들 덕분에 우리의 생각이 맞다는 확신을 갖고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면서 "분명한 한 그림을 보고 가고 있다. 멤버들도 그걸 잘 이해하고 본인들만의 철학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이티즈를 "밸런스가 잘 맞는 그룹"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에이티즈의 Mnet '킹덤 : 레전더리 워' 출연에도 기대가 모아진다. 무대를 장악하는 파워가 남다른 팀인 만큼,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이들이 '킹덤 : 레전더리 워'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거칠고 파워풀한 에너지와 날렵하고 섬세한 표현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에이티즈가 어떤 레전드 무대를 탄생시킬지 이목이 집중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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