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18일 올해 임금 인상률을 예년의 두 배가 넘는 9%로 결정한 속내는 복잡하다. 최근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잇따라 파격적인 수준의 연봉 인상안을 내놓으면서 인재 이탈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지난달 발표한 성과급을 둘러싼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성과급이 아닌 ‘기본 임금’을 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회사 내 사무직을 중심으로 한 세 번째 노조가 출범한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급별 초임 최대 600만원 인상
LG전자의 성과 보상체계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해 성과에 대한 보상 비율을 발표한 지난달 16일이었다. 당시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H&A(생활가전) 사업본부의 주요 사업부에 750%(연봉의 37.5%)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문제는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 등 다른 사업본부였다. 100만~300만원 수준의 격려금만 지급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부 직원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성과급 논란은 성과보상 체계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LG전자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 경쟁사보다 낮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노조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생산직 노조는 임단협에 앞서 11.2%에 달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의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는 방법은 임금을 올리는 것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전자 이외의 다른 LG 계열사들도 직원들의 연봉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LG화학은 최근 임금체계를 개편해 직급별 초임 연봉을 대폭 인상했다. 초임 연봉은 해당 직급 승진 첫해, 신입사원은 입사 첫해 연봉을 의미한다. 신입사원 연봉은 4300만원에서 4600만원으로 6.9% 뛰었다. 선임과 책임급 직원의 초임 연봉은 역시 각각 300만원과 400만원 인상됐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임단협을 통해 기능직 기준의 임금을 평균 6.5~7%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가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임금 인상률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애사심만으로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없다”며 “여러 계열사가 성과보상 체계를 정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대기업도 임금인상 요구 커질 듯
경제계에서는 주요 대기업과 일부 IT 기업에서 시작된 보상 확대 요구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의 경우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요 기업에서 성과보상 이슈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한층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번 LG전자의 파격 인상을 도화선으로 대형 제조기업 생산직의 임금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합의로 LG전자 직원들의 평균 급여는 지난해 기준 8600만원에서 9000만원대로 대폭 인상될 전망이다. LG전자의 직원 수가 4만 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가 부담하는 인건비도 3조4463억원에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계에선 “그동안 IT기업의 파격 보상은 실제 근무인원이 제조기업보다 많지 않아 가능했지만 이번 LG전자 결정으로 부담을 느끼는 제조 대기업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