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해도 개회 직전의 대기업 정기 주주총회장은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민감한 안건에 몰려드는 소액주주, 시민단체 회원들은 물론 경찰까지 출동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당시 한 주총장에서 “의장!”을 외친 사람이 마이크를 잡더니 “안건은 회사 발전의 충정을 담은 결정이어서 반박 여지가 없다”고 예상 밖 발언을 해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기업들이 미리 ‘친위 주총꾼’을 준비하던 시절 얘기다.
대개 주총은 “재청(동의)한다” “이의 없으면 박수로 통과” 식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개인주주의 주총 참여율이 0.1~0.2%에 불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주총안건보다 기념품에 더 관심 보이고, ‘용돈’을 바라며 진행에 딴지 거는 주총꾼 모습도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랬던 기업의 주총장도 ‘온라인 생중계’와 ‘전자투표’ 확산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사태와 ‘스마트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 급증이 불러온 변화다.
어제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주총이 딱 그랬다. 개인주주가 214만 명으로 작년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나다 보니, 참석 못 한 주주들을 위해 창사 이래 첫 온라인 생중계를 한 것이다. 현장에 참석한 주주 900명은 전자표결 단말기로 안건에 투표했고, “박수로 통과”란 발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삼성 계열사들은 물론, 현대자동차와 카카오도 주총 온라인 중계 준비에 바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주친화 정책은 기업 경영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주총장에 방송장비를 설치하고, 온라인 질문게시판을 만들고, 서버 다운을 걱정해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이젠 ‘개미투자자 900만 명’ 시대다. 12월 결산법인의 주식 소유자(중복 제외)가 작년 말 약 919만 명으로, 1년 새 48.5% 급증했다. 15~64세 인구(3713만 명)의 24.8%에 달해, 국민 넷 중 하나는 주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국내 상장주식의 개인 보유비중도 다시 50%를 넘겼다.
주식 대중화가 가속화하면서 주총장 문화도 주주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처럼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이전에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 주총은 세계에서 몰려온 주주들이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질문하고, 함께 밴드 공연을 즐겼다.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누구나 기업의 주인이 된다. 딱딱하고 근엄하던 주총도 얼마든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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