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여야의 정치적 담합으로 일사천리 국회를 통과했다. 코로나19 재난 극복을 위한 4차 재난지원금은 이해집단의 전방위 로비에 나눠먹기 예산으로 전락했다.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한 예비타당성조사가 사망선고를 받았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예타는 세계은행으로부터 ‘공공정책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99~2019년 144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거뒀다. 그런데 국가 균형발전 등 정치적 필요성이 커지면서 예타 면제 사업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현 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는 96조원으로 이명박 정부 61조원, 박근혜 정부 23조원을 합친 것보다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공공재원 사용의 검증 장치가 사라졌다고 비판한다. 세금 낭비를 막을 마지노선이 붕괴됐다. 예타 면제는 예타가 정치가 됐음을 의미한다. 재정준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퍼주기식 재정 운용으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예외적 조치인 추경 편성과 재난지원금이 뉴노멀이 됐다. 19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되면 국가채무는 966조원이 되고 국가채무비율은 48.2%로 상승한다. 적자국채 규모는 1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5~6차 지원금이 추가되면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에 진입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국회 시정연설에서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을 병행해 재정건전성을 지켜나가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역설했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채무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한국과 같은 중규모 개방경제는 원화가치 유지와 외환·금융시장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에 대한 대내외 신뢰가 크지 않다. 특히 대외적 충격에 취약하다. 우리나라가 과도한 재정적자에 각별히 유념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일반정부 채무비율은 OECD 비기축통화국 중 6위를 기록했다. 나랏빚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국가일수록 국가신용도가 빠르게 하향 조정되는 경향이 있다.
국고보조금의 방만한 운용이 우려스럽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부정 수급 사례가 2016년 214건에서 2020년 612건으로 급증했다. 98조원에 이르는 방대한 보조금이 ‘공짜 돈’ ‘눈먼 돈’으로 인식돼 밑 빠진 독이 됐다. 재정지출의 대표적 블랙홀로 전락했다. 지방에 주는 복지보조금은 지난 10년간 세 배나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복지지출 증가율을 훨씬 웃돈다. 중앙정부와 중복되는 복지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남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조금 통폐합, 일몰제(日沒制) 같은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
현금성 예산 지원이 도를 넘어섰다. 올해 예산의 20% 수준이다. 전 국민이 현금성 복지에 중독돼가는 양상이다. 현금성 예산은 사업예산과 달리 일단 도입되거나 지원 수준이 높아지면 폐지하거나 혜택을 줄이기가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지출의 정책목표와 성과 간 연관 관계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민간부문의 자생력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재정준칙 도입 방안이 발표됐지만 각종 예외조항으로 정책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민간 싱크탱크인 건전재정포럼은 대외 충격에 약한 한국은 기축통화국보다 부채비율을 낮게 유지하고, 재정준칙의 내용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60%대였다. 이후 고령화, 경기침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손쉽게 확장적 재정정책에 안주한 결과 재정불량국가가 된 것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 재정 운용은 불가피하지만 재정 낭비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도처에 비효율이 산적해 있다. 세수가 늘어나는 재정지출을 못 따라가는 ‘악어의 입’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순자(荀子)는 일찍이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개원절류(開源節流)를 강조했다. 포퓰리즘을 배격하고 규율을 지키는 실사구시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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