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수출 강국’입니다. 지난해 5125억달러어치를 수출했죠. 세계 랭킹 7위입니다. 하지만 제약업의 수출 기여도는 극히 낮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이지만, 수출액만 따지면 태어난 지 10~20년밖에 안 된 게임산업만도 못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산 약품의 수출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셀트리온 보령제약 등 일부 업체에 그쳤던 ‘수출 제약·바이오 기업’ 리스트에 한미약품이 추가됐습니다. 이 회사가 2015년 내놓은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사진)이 지난 4일 멕시코에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는 제약업계 입장에선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연간 15조원 규모로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10% 이상 커지는 ‘성장시장’이기도 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24조3000억원이었고, 성장률은 5.2%였습니다. 추세를 보면 머지않아 한국보다 커질 게 분명합니다.
한미약품이 멕시코 시장 진출에 환호성을 내지른 이유는 또 있습니다. 멕시코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만율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죠. 비만율이 높아지면 이상지질혈증 등 심뇌혈관계 대사질환 발병률이 높아집니다. 로수젯을 팔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장이란 얘기입니다.
로수젯은 이상지질혈증 치료 성분인 ‘에제티미브’와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복합신약입니다. 복합신약이란 여러 오리지널 의약품을 배합해 효능을 높이면서도 부작용을 개선한 의약품을 말합니다.
로수젯이 처음 나온 2015년만 해도 의료현장에선 스타틴 단일제를 처방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특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심장마비 예방 효과가 있는 아토르바스타틴이 인기였습니다. 문제는 스타틴이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근육통이나 간기능 저하, 손발 저림, 기억력 감퇴 외에도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부정적인 보고가 끊이지 않았죠. 스타틴의 부작용을 완화한 복합제가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이전까지 의료현장에서 잘 처방되지 않았던 에제티미브가 스타틴 제제와 병용했을 때 치료 효과가 우수하면서도 부작용이 적다는 임상 결과가 나오면서 복합 처방이 확대됐습니다. 이후 미국임상내분비학회(AACE)와 미국내분비학회(ACE)가 “복합제를 통해 LDL콜레스테롤을 관리하라”고 권고하자 시장이 완전히 뒤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매출이 늘던 스타틴 단일제(아토르바스타틴)의 대표주자격인 화이자의 ‘리피토’ 처방액은 지난해 3% 감소했습니다. 스타틴 단일제 중 복제약(제네릭)이 아닌 오리지널 의약품의 처방액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가 처음입니다. 반면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 복합제의 처방 금액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배 늘어났습니다. 특히 로수젯은 지난해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단일 의약품 기준 처방액 1위(991억원·유비스트 기준) 자리에 올랐습니다.
국내 이상지질혈증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관련 치료제 시장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2018년 이상지질혈증을 진단받은 20세 이상 성인은 1155만8000명으로, 2002년 이후 16년간 7.7배 증가했습니다. 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지질동맥경화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의 이상지질혈증 유병률은 38.4%로 나타났습니다.
학계 관계자는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3개 만성질환 가운데 이상지질혈증 환자가 가장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고령화와 함께 식습관 변화로 이상지질혈증 유병률은 계속해서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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