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추진 중인 쿠팡이 최대 4조원 규모의 공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이사회 의장)은 상장 후에도 이사회에서 76.7%의 의결권을 갖게 돼 경영권을 유지할 전망이다.
2일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공모 희망가격을 주당 27~30달러 수준으로 산정했다. 이번 기업공개(IPO) 대상 주식이 1억2000만주(신주 1억주+구주 2000만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36억달러(약 4조197억원)를 조달하는 셈이다. 구주 매출을 제외하고, 신주 발행으로 조달하는 자금은 30억달러 규모다.
쿠팡이 희망하는 공모가 중 최상단인 30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쿠팡의 전체 시가총액(17억671만4142주*30달러)은 510억달러(약 56조946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시아 기업 중 4번째로 규모가 큰 것이다.
이번 IPO로 쿠팡에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등 주요 주주들은 상당한 투자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 후 쿠팡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는 주요 주주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지분 39.4%)와 그린옥스 캐피털(19.8%), 매버릭 홀딩스(7.7%) 등이다.
개인 최대 주주는 그린옥스캐피탈의 창립자이자 비상임이사인 닐 메타로, 지분 19.8%를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이번 상장 대상인 클래스A 주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일반 주식의 29배에 달하는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클래스B 주식 전량을 갖고 있으며, 상장 후 76.7%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김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 B 주식은 클래스 A 주식으로 전환 가능하다. 가능성은 낮지만 김 의장이 전환을 신청할 경우 상장 후 지분율은 비전펀드 33.1%, 그린옥스 16.6%, 닐 메타 16.6%, 김 의장 10.2% 순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비전펀드 외에 다른 벤처캐피털들은 투자 기간이 길었던 만큼 상장 후 이익실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쿠팡은 주요 경영진과 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주식 보호 예수 기간을 최대 180일로 명시했다.
쿠팡이 이르면 이달 말에 4조원에 육박하는 ‘실탄’을 확보하는 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핵심 공략지는 물류, 콘텐츠, 쿠팡이츠(배달) 강화다. 큰 틀에선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로켓와우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쿠팡은 이날 중국 상품 직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큐텐 등 중국 업체를 통해 이뤄졌던 중국산 제품의 직구는 배송 기한이 2주일 가량 걸리는데다 배송비도 지불해야했다. 쿠팡에서 구매하면 로켓와우 회원에 한해 배송비가 무료다. 쿠팡 관계자는 “미국 직구를 이미 시행 중인데 중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구매할 수 있는 상품 구색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통 및 IT(정보통신) 업계에선 쿠팡이 작년에 출시한 OTT(쿠팡플레이)의 콘텐츠를 보강하는데 상당한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쿠팡 경영진이 올해 OTT 강화를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은 이달 5일부터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훗스퍼의 경기를 쿠팡플레이를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EPL 국내 중계권을 보유한 에이클라가 지난달 26일 쿠팡과의 전략적 제휴를 밝힌 바 있다. 네이버에서 쿠팡으로 갈아탄 것이다. 쿠팡은 OTT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미국 메이저리그(MLB), 미 프로농구(NBA) 등 스포츠 중계권을 가져올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콘텐츠 업계에선 네이버, 카카오가 양분하고 있는 콘텐츠 시장에서 쿠팡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 쿠팡이츠 강화를 통해 딜리버리히어로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배달의민족과 한 판 승부를 펼칠 전망이다. 신선식품 배송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해 올해부터 전국에 7개 풀필먼트센터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물류 분야에 대한 투자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쿠팡은 SEC에 제출한 수정 상장 신청서류에서 상장 주체인 미국기업 쿠팡주식회사(쿠팡 Inc)의 한국 자회사인 쿠팡과 계열사들이 한국법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새로 명시했다. 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투자 위험요소로 추가했다. 이런 내용은 지난달 12일 제출했던 상장 신청서류에는 없던 것이다.
쿠팡은 이와 함께 한국 고용노동부가 쿠팡 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원을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 계약자(개인사업자)로 판정했다는 내용은 ‘위험요소’에서 삭제했다. 아직 법적인 판단이 나와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