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의원총회에서 차기 상의 회장에 선출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직책을 맡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회장직을 수락하기까지) 상당한 망설임과 여러 생각, 고초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앞날과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을 구축해나가겠다”고 짧게 포부를 밝혔다.
경제단체 ‘신 역할론’ 주목
경제계에선 최 회장이 4대 그룹 총수로는 처음으로 경제단체 ‘맏형’격인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을 맡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를 향해 규제개혁의 목소리를 높임과 동시에 새롭게 회장단에 합류한 IT·금융업계 젊은 최고경영자들과 함께 경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고 있다.최 회장이 이끄는 서울상의 회장단의 면면은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IT, 스타트업을 대변하는 젊은 기업인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타다 금지법’과 같은 신산업 규제에 대응하는 게 한층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여전히 규제는 과거 제조업 환경을 생각하고 신설된다”며 “IT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경제단체 활동에 반영되면 정치권이 신산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에선 최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경제단체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반(反)기업 법안과 정책을 막아달라는 주문이다. 4대그룹 총수 출신의 ‘실세 회장’이 탄생하면서 경제계의 기대감이 한층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규제가 생기면 그제서야 대응하는 ‘사후 약방문’이 아니라 미리 정치권과 소통하는 ‘사전 약방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한상의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대신해 경제계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해왔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반기업 정서부터 해소해야
전문가들은 반기업 정서 해소를 최 회장의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정치권엔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며 “새로운 기업이 계속 탄생하고, 기존 기업은 해외로 이전하지 않아야 일자리도 창출되고 국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최 회장이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주도하고, 젊어진 회장단과 호흡하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소통을 아우르는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이날 상의 부회장에 선임된 박지원 (주)두산 부회장은 “최 회장을 보필해 열심히 해보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장병규 의장도 “최 회장이 큰 결단을 내렸다”며 “많은 변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제단체 통합론’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설립 목적이 제각각인 단체를 통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최 회장도 이날 기자들에게 “경제단체 통합론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의에는 최 회장의 전임자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이순형 세아제강 회장, 이우현 OCI 부회장,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서울상의 의원 70여 명이 참석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