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이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암호화폐(가상화폐) 가격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여러 기준과 판단 척도로 볼 때 현재 암호화폐 가격은 이상 급등으로 보인다”며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으로 높은 가격 변동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암호화폐 가격이 오른 배경에 대해서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상승했다”며 “테슬라가 대량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인 데다 자동차 구매 결제 수단으로 도입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선 “설계·기술 검토가 거의 마무리됐다”며 “올해 가상환경에서 CBDC 시험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치솟는 국채 금리를 안정화하기 위해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채 수급 여건과 시장금리 상황을 보고 국채 매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는 국채 발행 물량이 예년보다 크게 늘어날 것인 만큼 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곧바로 인수하는 ‘국채 직매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은이 국채를 직매입하면 ‘부채의 화폐화(중앙은행이 정부 부채를 떠안는 것)’ 논란이 일어나면서 재정건전성 우려, 중앙은행 신뢰 훼손, 대외 신인도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국에서는 중앙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금법은 빅브러더法 맞다…금융위 이해 부족"
"자료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 무관" 정면 반박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금융위원회를 향해 “상대방 정책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23일 강하게 질타했다. “지급결제제도 등 전자금융거래법을 둘러싸고 왜 논란이 불거졌느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자료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 무관" 정면 반박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지급결제거래 관리 권한을 확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을 통해 네이버페이 등으로 물건·서비스를 산 개인의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 총재는 금융위를 겨냥해 “개인정보를 강제로 한곳에 모아 놓는 것 자체로 ‘빅브러더(개인의 정보를 독점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논란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9일 “전화 통화 기록이 통신사에 남는다고 통신사를 빅브러더라고 할 수 있느냐”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총재는 “통신사와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통신사라도 보유한 기록을 강제로 한곳에 모아 놓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 자체가 빅브러더”라고 반박했다.
개정안 목적이 빅테크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금융위 주장에 대해선 “금융결제원에 자료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 무관하다”며 “지금도 소비자 보호 장치가 있다”고 했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지급결제를 중앙은행이 독점해야 한다는 기관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도 이날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금통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일부 조항(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 부분)이 중앙은행 지급결제제도 업무에 미칠 영향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법안(개정안)의 해당 부분을 일단 보류하고 관계 당국은 물론 학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검토에 기반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입장문은 금통위원 7명 가운데 당연직인 한은 총재·부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이 최근 회의를 거쳐 작성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