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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두 추상화 '대비의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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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쌓아 올린 다채로운 색깔. 그 두터운 마티에르를 스퀴지가 밀어낸다.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두었던 슬픔이 떠오르듯 의도치 않은 색이 캔버스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화가 신민주(52)의 ‘불확정적 여백’ 연작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만큼이나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옆 전시관에서는 흑백이 빚어내는 원초적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캔버스 위로 검댕과 그을음, 날카로운 선이 자유로운 드로잉을 만들어 낸다. 독일의 신예 작가 페피 보트로프(35)는 흰색과 검정만으로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가 상반된 매력을 가진 두 추상화가의 개인전으로 올해 전시의 테이프를 끊었다. 본관과 별관에서 각각 신민주의 개인전 ‘활기’, 보트로프의 개인전 ‘검은 나사’가 열리고 있다. 독립된 두 전시를 같은 기간에 나란히 선보이며 상반되는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대비’의 매력을 전달한다.

신민주는 ‘칠하기’와 ‘지우기’라는 근원적 행위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한다. 거침없는 붓 터치와 스퀴지로 안료를 밀어내는 행위가 중첩되면서 밀도 높고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캔버스 위에서 레슬링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감을 바르고 스퀴지로 밀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작가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속도전의 성격도 띤다.

지금까지 흑백 계열을 주로 사용해왔지만 이번에는 화려한 컬러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신민주는 “갱년기를 겪으며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나도 달라졌다”며 “특히 색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제한된 색채 속에서 그림 그리는 행위에 열중했지만 이제는 색이 주는 감흥을 느끼고, 모험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보트로프의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충동을 형상화한 듯하다. 독일의 석탄 광업지대인 루르 지역 출신답게 흑연, 목탄, 석탄 등 부러지기 쉬운 검은색 재료가 붓을 대신한다. 얼기설기 뒤얽힌 선들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언어를 넘어선 리듬감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는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가 유럽에서 보트로프의 작품을 보고 매료돼 직접 기획했다. 박 대표는 “세계 미술계에선 색을 많이 쓰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오히려 흑백으로 단순화한 보트로프의 작품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며 “작가의 고향인 탄광 지역에서의 기억을 불규칙하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데서 강한 자의식이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두 전시 모두 다음달 20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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