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노사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올 1월에만 현금 1000억원을 소진한 르노삼성이 수익성 개선에 나섰지만, 노조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1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대수와 생산물량이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고 지속적인 고정비 증가까지 맞물려 어려움이 커진 탓이다. 수익성과 수출 경쟁력을 개선하지 못하면 르노그룹으로부터 향후 신차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내수 9만5939대, 수출 2만227대로 총 11만6166대를 판매했다. 2017년 기록한 27만6808대 판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이다. 생산량 또한 11만4630대에 그쳐 2017년 26만4037대의 43% 수준에 불과했다. 영업이익은 2012년 이후 8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업계는 르노삼성의 영엽손실 규모가 700억원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도미닉 시뇨라 사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르노삼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불가피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뇨라 사장은 "지난해 르노삼성이 보유한 현금 2000억원이 소진됐다. 지난 1월에도 판매 실적이 부진한 탓에 현금 1000억원이 더 줄었다"며 "과감한 비용 절감에 대해 절박함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구조조정은 불가하며 임금을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이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달 21일부터 모든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노조는 이에 대해 "명분없는 이번 희망퇴직은 현장을 혼란시키고 노사관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물량 감소와 판매 저하를 예상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책임을 지고 경영진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건비에 대해서도 "2019년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13.3%에 달했지만 르노삼성은 6.8%에 불과하다"며 고정비 부담이 크다는 사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누가 현대차보다 많은 임금을 달라고 했나. 적어도 비슷하게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집으로 가라고 하는 파렴치한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맞받아쳤다.
노조는 르노삼성의 노동 강도가 업계에서 가장 높은 반면 임금은 가장 적다고 주장한다. 2019년 기준 르노삼성의 평균 연봉은 7141만원으로, 9500만원 수준으로 알려진 현대차와 적지않은 차이를 보인다.
같은 기간 양사의 생산 실적은 르노삼성이 16만4974대, 현대차가 178만6131대다. 생산성 지표가 되는 시간당 생산대수(UPH)의 경우 르노삼성이 60대를 유지했으나 물량 감소 여파에 45대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평균 60UPH, 아산공장은 66UPH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반발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은 구조조정과 고정비 절감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적자도 문제지만 르노 그룹으로부터 신차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르노 그룹의 르놀루션 발표 이후 이뤄진 직장협의회 화상회의에서 르노삼성에 신차를 배정해달라는 요구가 나오자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르노삼성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며 "(후속 모델을) 한국에서 생산할지 모르겠다"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제조 및 공급 총괄 부회장도 지난 9일 "르노삼성의 제조원가가 스페인 공장의 두 배에 달한다"며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대안을 찾겠다"고 경고했다.
총괄 부회장의 경고는 르노삼성에 배정한 뉴 아르카나(XM3) 유럽 수출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러한 경고가 현실화될 경우 지난해 판매 실적이 11만대 수준에 그친 르노삼성에게는 사실상의 사형선고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 배정 권한을 쥔 르노 그룹이 르노삼성의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수익을 냈더라도 미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신차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르노삼성은 수익성 개선과 함께 올해 두 번의 임금협상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충돌을 빚으면 공멸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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