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의 부탁을 받고 낙태 수술을 해줬다가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한 산부인과 의사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임신 초기 낙태 행위를 금지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온데 따른 조치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업무상 촉탁 낙태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선고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광주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13년 한 임신부 B씨에게 낙태시술을 해줬다. 미혼 상태이던 B씨는 임신한 줄 모르고 복용한 수면제 등 때문에 기형아 출산을 우려하고 있었다.
1·2심은 A씨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피고인이 그 기간 사고 없이 보내면 형의 선고 자체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주로 경미한 범행에 적용되지만, 유죄 판결의 일종이다.
하지만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심판 대상이 된 법률 조항이 위헌인 것은 맞지만, 법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고자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법률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A씨에게 직권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위헌이라고 선언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한다”며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